숫자를 센다. 숫자들이 외롭지 않게 숫자를 센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숫자가 외롭지 않게 숫자를 세며 여러 행동을 한다. 선을 밟거나 밟지 않는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가 성공할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사람들을 힐끔 본다. 저 사람이 어떤 양말 혹은 신발을 신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혹은 보지 않고 색을 맞춘다. 맞추면 나에게 행운이 따른다. 숫자 4를 피한다. 이런 기이한 행동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강박들. 이런 강박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에게 바치는 행동들이다. 물론 강박행동이 부드럽게 잘 맞춰져도 안 좋은 일은 일어났다. 당연한 일이다. 삶의 흐름과 강박행동은 전혀 관련이 없다. 나도 알고 있다.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다. 어렸을 때도 이 불확신은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빌었다. 오늘 하루 좋은 일만 생기게 해주세요. 오늘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빌고 빌었다. 행복을 빌기 보단 무탈한 하루를 빌었다. 무탈한 하루. 좋은 하루를 보내려는 마음. 안 좋은 것들을 나에게서 멀리 떨어뜨리려는 마음. 예상하건데 강박은 이런 나의 심리에서 슬금슬금 나온 것 같다. 나는 무엇이 그리 불안했을까.
웃기다. 삶은. 아니. 강박은 정말 모순적이다. 좋은 일을 위해 행동했던 강박들은 나에게 상처를 냈다. 강박에 집착을 하게 되어 이상행동을 반복하고 그런 나는 정상적인 인간처럼 보이고 싶어 꽤 자주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인간이 되었다. 눈치를 필요 이상 본 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강박에 져버려 스스로도 지나치다 싶을 땐 거대한 자책이 몰려온다. 나는 왜 강박에 잠겨있나. 부터 시작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까지 간다. 0부터 100까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강박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분명히 그렇다.
때가 됐다. 늦던 늦지 않았던 30년이 넘게 함께 한 강박들을 이제 버리려 한다. 이미 오랜 시간 내 안에 살았기에 습관이 되어버린 놈들도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숫자를 세고 나도 모르게 선이나 꼭짓점을 밟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일부로 강박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강박을 이긴다. 나는 강박을 이긴다. 주문처럼 외운다.
잘 살고 싶은 욕심이 과했나. 마음이 좁아져 더 이상 나쁜 일을 견딜 수 없게 된 걸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그랬을까. 그래. 그래도 하지만. 하지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힘을 기르려고 한다. 근육을 키우려 한다. 강박을 이길 수 있는 근육. 강박에게 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근육. 보여주겠다. 강박행동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나를.
40대가 된 나를 상상한다. 즐거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고 흔들리는 풀잎과 그걸 비추는 햇살. 그래서 생긴 그림자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나. 깔끔하게 차려입고 일을 마친 후 산책을 하는 나. 머릿속으로 숫자 대신 이것들을 곱씹는 나. 걸음은 부드럽다. 선을 밟거나 밟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감자튀김을 4개씩 집어 먹는 나. 그런 나를 상상한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 나는 강박을 이긴다. 나는 강박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