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발라드

by 김은우

글이 안 써진다. 마른세수를 한다. 눈은 뻑뻑하고 허리는 이래도 되나 싶게 구부러져 있다. 난 지금 마치 잘 구워진 동그란 머핀 같다. 안 써지더라도 뭐라도 쓴다. 이 말. 저 말. 어쩌구. 저쩌구. 퇴고 시 결국 지워질 의미 없는 글자들을 적는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진다. 글을 고민하는 시간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이 좋다고 느낀다. 머리와 가슴. 내 혈관과 세포에 있는 글자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원하는 대로 뱉어내고 수정하는 시간. 나와의 대화. 혹은 세상과의 대화. 화를 내기도 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대화. 곱씹을수록 소중한 시간. 그러다가 친구 예나 생각이 난다. 아마 둘 다 글에 대한 마음이 유난스러워 예나 생각이 났으리라. 아 정말 내 생각의 흐름은 못 말린다. 그래도 이런 흐름 덕에 쓸 수 있는 것들이 있어 나는 못 말리는 나의 뇌를 가만 둔다.

어쩌면 나는 예견된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산책을 좋아했는데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그날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감정들. 왜 우울한가.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랑고백 등. 이런 산책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이 후로 산책 궁시렁은 조금 줄어들었다. 이제는 하얀 종이에 말을 하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로 내 마음을 쓸고 닦는다.

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땐 어. 라는 말이 나온다. 길게 어. 한다. 왜 우리는 깊은 생각의 문을 열면 이런 소리를 낼까. 아무튼 어. 해도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글은 나를 도와주는 이로운 수단이라는 것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왜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 친구 같다. 기억나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내가 글을 언제부터 썼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내가 썼고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일주일에 한 편은 적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약속을 못 지킨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켰다. 나는 내 글을 지켰다. 짧고 소중한. 나를 지켜주는. 나를 말해주는. 글자로 된 아름다운 악보.

작년이 끝나갈 즈음 에세이 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 중 선생님은 나에게 독자는 누구라고 설정해 쓰냐 물어보셨다. 나는 나를 위해 쓴다고 답했다. 여전히 그렇다. 나는 내 글을 사랑한다. 내 글을 보며 위로받고 웃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내 글의 열렬한 독자이다. 난 평생 나를 위해 쓸 것이지만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써보고 싶다. 타인을 위한 쓰기. 적당히 이기적이고 많이 이타적인 쓰기. 아마 내 글쓰기의 새로운 걸음이 될지 모르겠다.


나의 노래. 나의 시. 글쓰기에 대한 나의 발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