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든 가치관

by 김은우

춥지도 덥지도 않던 가을의 어느 날 오후 5시 쯤이었다. 진수는 동네 골목길에서 영우 혼자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을 지는 햇빛 때문에 주황색으로 둘러싸여 있던 영우는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황빛이 나던 영우의 눈은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이는 눈이었다. 소중한 것이 없어 보이는 눈. 떠나고 싶어 하는 눈. 그런 눈. 그의 몸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런 영우를 본 이후부터 진수는 영우에게 조금 무관심해 졌다. 꽤나 재밌고 유쾌한 성격 덕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람들이 다가오는 그를 동경의 눈빛으로 보곤 했었지만 텅 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영우를 본 후부턴 특별한 마음을 담아 영우를 대하지 않았다. 원래 인사정도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진수와 영우의 관계나 인사 따위에 신경을 쓰며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진수의 마음에서는 영우에 대한 동경심이 사라졌으므로 그의 인사에는 어떤 애정이란 게 없다는 것을 세심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다.(하지만 역시 영우 포함 아무도 몰랐다.) 동경하던 사람의 민낯을 보면 더 좋아지거나 싫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후자였다. 그냥 나 같은 애였어.


그렇게 생각할 쯤에 영우는 죽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를 한강에 몸을 던졌다고 그랬다. 유서에는 자유와 의미, 이런 이야기를 적었다고 그랬었나. 당시 중학생이었던 진수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유여서 단어 조각조각만 머리에 들어왔다. 그래서 진수는 영우가 한강에 비친 하늘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늘을 보던 영우의 눈이 증거였고 진수는 목격자였기 때문에 아주 터무니없는 상상은 아니었다. 또, 그렇게 생각하니 영우가 덜 안쓰럽게 느껴졌으므로 진수는 그렇게 상상하는 것에서 그렇게 확신하기로 했다. 영우가 죽고 나서 진수의 마음은 묘하게 이상했지만 크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교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갔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영우에게 절을 했다. 육개장을 먹고 다시 집으로 갔다. 이상했다.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이 이제 여기에 없다는 것이. 공허함보다는 당황스러움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다. 집에 와 엄마에게 같은 반 아이가 죽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수는 정말 슬프지 않았는데. 내가 왜 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우의 죽음을 알았을 때는 많이 놀랐을 뿐이고 그 친구는 나에게 소중한 어떤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왜 울고 있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죽음이란 이런 건가 생각만 할 뿐이었다.


영우가 화장된 후 장의버스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저런 색의 버스는 처음 보네. 진수는 그냥 그 정도 생각만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버스가 커브를 돌며 운동장에 있는 모래가 바람이 되어 날아갔다. 그 형체는 완벽한 동그라미가 세 개 정도가 층층이 쌓여있는 듯했고 햇빛 때문에 모래색과 주황색 그 사이의 색을 띄고 있었다. 영우니? 진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말했고 답은 없었다.



*



진수는 영우가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영우와 대화를 더 많이 했다. 진수는 끊임없이 영우에게 말을 걸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니? 거기는 자유롭니? 배는 안고프니? 걸어다니는 거니 아니면 날아다니는 거니? 물이 차갑진 않았니? 화장할 땐 어땠니? 언제나 답은 없었지만 진수는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수는 그제서야 영우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봤을 때 진수는 전과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평범한 학생으로 어딜가나 튀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예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었는데 혼잣말이 조금 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잣말이 아니라 영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진수도 허공에 말을 건넨다는 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에 혼자 걸을 때만 영우에게 말을 건넸다. 진수가 가능할 때만 말을 거는 이기적인 대화법이었다. 너는 학교도 안다니고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을 거 아냐. 혼잣말 말고도 진수에게 변화가 하나 더 생겼다. 가치관. 이제 영우 같은 사람, 그러니까 눈이 텅 빈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 않겠다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하나 만들었다. 가치관. 가치관. 진수 스스로도 그것을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다. 진수는 가치관의 사전적 뜻을 검색해 알아본 후 그것이 꽤나 단단한 다짐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방관하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은 가치관의 정의만큼이나 단단한 것이었으므로 틀리지 않은 표현이었다. 널 본 적 있어. 예전에 골목길에서. 그 때 무슨 생각했어? 내가 어떻게 했으면 네가 죽지 않았을까? 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어? 있다면 나는 뭐든지 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 같아. 영우야, 이제는 뭐든 하려고. 그래야할 것 같아. 나를 위해서. 나 편하자고. 진수는 대답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진수는 어쩐지 평생 외로울 일은 없을 거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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