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꽃잎이 흩날린다. 흩날리는 꽃잎은 바람을 타고 둥둥. 마치 작은 배가 바다 위를 헤엄치는 것 같다. 걸음에 살짝 속도를 붙인다. 손을 뻗으며 꽃잎을 잡으려 한다. 이 행동은 작은 행복을 어떻게든 잡으려는 나의 마음 같다.
작은 것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자주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그들은 활성화된 행복 근육을 이용해 이런 저런 행복을 수집한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낀다면 큰 행복에는 얼마나 벅찬 감정이 사용될까. 감정을 잘 쓰는 사람들. 감정을 쓰는데 익숙한 사람들. 그걸 두려워 않는 사람들.
행복근육은 타고난 거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가령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라고 말하는 건 유전적으로 타고난 성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자라난 환경이 큰 부분을 차지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저. 그저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에 유약한 행복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구체적인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다툼. 애정결핍. 성정체성. 존재에 대한 부정과 혐오. 정신질환 등의 이유로 나는 흐물거리는 행복근육을 가지지 않았을까 예상할 뿐이다.
즐겁다 좋다 재밌다는 말은 행복과 같은 맥락에 있다. 나는 행복보다는 이 말들을 자주 쓰는데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난 그냥 행복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했기에 행복에 대한 내 의문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 얘기한 작은 행복들이 진정 작은 것들일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맛있는 걸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작은 행복일까. 이것들은 누군가를 살게 해주니 큰 행복 아닐까. 또 이게 큰 행복이라면 우리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만족해야할까. 더 더 큰 행복은 사치라고 생각해야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일까. 뭘 더 바라지 않는 게 행복에 도움이 되는 걸까. 행복이란 대체 무엇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모두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을까.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에라이 젠장.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알아서 살아야겠다.
하지만 알아서 산다는 게 살던 대로 산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꽃잎을 잡으려 손을 뻗는 것처럼 행복을 잡으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만히 앉아서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행복을 잡으려고 해야겠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크기 상관없이 행복을 느끼려고 음미해봐야겠다. 즐거운 거. 좋은 거. 재밌는 거 그거 행복한 거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같은 맥락에 있으니까. 현재에 충실해봐야겠다. 현재를 느끼고 누려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