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편지
어렸을 적, 배우가 되겠다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평범하게, 그냥 살면 안 되겠니?” 엄마는 사람들은 원래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지 않는다고,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는 엄마가 내 고집을 꺾으려고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나는 더욱더 강하게 내 주장을 밀고 나갔고 대학도 연극과로 진학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싫었다. 남들과 다르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다. 부모님도 이런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평범해지고 싶다. 왜냐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싶기 때문이다. 연극과를 나와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나에게는 의견을 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던 내가 벽에 부딪힌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다가 내 삶을 지탱해준 꿈을 이루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나는 평범해지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했고 지금 그것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내 앞에서 누가 도전을 말한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평범하게 그냥 살아, 중간은 가야지 목소리를 내고 네가 말한 도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나 자신이 평범해질 수 없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로 여겨진다. 내가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평균에 근접한 연봉을 바라는 것은 사치인가. 왜, 평범해지려 할수록 평범해질 수 없을까. 나에게 평범해지기 위한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다시는 안 올 평범한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지금도 평범해지려 하면서 또 다른 꿈을 품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지금도 평범함을 꿈꾸며 대한민국의 평균을 바라지 않고 있다. ‘헬조선’에서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회 주류들에게 말한다. 청년들을 한 줄로 세우고 평가하고, 옳고 그름을 정해놓은 공식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청년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된다. 어디에나 통용되는 평균은 없다. 누군가 말하는 평균이 있을 뿐이다.
사회는 계속에서 줄 세우기를 강요한다. 초등학교 때는 키로,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으로, 사회에 나와서는 스펙으로 줄을 세운다. 더군다나 이제는 성과연봉제의 확대로 ‘신의 직장’조차 없어졌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내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힘이 있다는 국회의원조차도 예외는 없다. 컷오프로 5선 의원도 공천이 배제되는 현실이다.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생각해본다. 맨 앞은 아닐 것이다. 참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꿈이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 꿈을 이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게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방법, ‘평범하게 사는’ 수단이라고 교육받는다. 나는 평범해지고 싶다. 그러나 절대 평균이 되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같이 평범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말한다. 만약 자신이 대한민국의 평균을 바라지 않는다면 분명히 가슴속 품은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나와 다르게 평범한 청년들에게 말한다. 꿈 없이 사는 대한민국 평균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당부한다. 절대로 안주하지 말 것을, 지금 자리에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을, 그리고 우리 같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