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
납작하고 어둡게 네가 나를 지나갔으면 바람이 나무의 그림자를 통과하듯이 그러나 살짝 흔들리면서 나의 그림자를 지나갔으면 물고기가 되었을 텐데 네가 가둔 연못에서 수면을 하늘로 알고 솟아오르며 발랄한 비행기가 되었을 텐데
식물처럼 헤어질 수도 있었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 자리에서, 병든 지도 모르게 몰래 아프다가 그 자리에서 바스러지는 꿈 헤어져서 다시 식물이 되는 꿈 나의 그늘이 너의 그늘을 만나 습지가 되는 꿈, 불가능한 물고기가 자란다 수은등 아래서
배드민턴 하는 연인들이 있었지 다정한 걸음으로 셔틀콕 그림자는 지상을 왕복했지 물고기처럼 튀어 올라 라켓을 휘두르는 연인들. 안경 벗고 바라보면 꽃을 주고 받는 나무들 같은 연인들. 땀을 흠뻑 흘리고 다정한 그림자를 거두어 가는 연인들이 있었지 내 그림자에 겹쳤던 네 얼굴 그림자가 뱀처럼 기어다니고
한밤의 공원에서 그림자가 떨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바람이 먼저 당도한 바람을 통과하고 있다 그 사이, 너의 그림자가 너의 의자였으면 안 보이는 너의 그림자가 환한 꽃그늘이었으면 나는 그만 지칠 수도 있겠다
살짝 흔들리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기에 다정한 연인들 같은 발랄한 물고기도, 조용히 바스러지는 식물도 되지 못하여 생기는 불가능한 물고기. 네 곁에서 지치고 싶지만 나의 바람은 너보다 뒤늦게 도착해버린 듯 하다. 제목 그대로 투명한 연못 속에서 읽히는 듯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