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진
우유 사러 갈게, 하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여자가 있다
생각해보니 여자는
우유 사러 갔다 올게, 하지 않고
우유 사러 갈게, 그랬다
그래서 여자는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왜?
슬픔은 뿌옇게 흐르고
썩으면 냄새가 고약하니까
나에게 기쁨은 늘 조각조각
꿀이 든 벌집 모양을 기워놓은 누더기 같아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 말
지금 기억나는 말
그때 무얼 하고 있었지?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조각보로 덮어둔
밀크 잼 바른 토스트를 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재방송 드라마가 하고 있었고
주인공이 막 오래된 마음을 고백하려는 중이었다
고백은 끝나고 키스도 끝났는데
우유 사러 간 여자는 영영 오지 않았다
벌집모양 조각보는 그대로 식탁 한구석에 구겨져 있고
우유는 방 안 가득 흘러 넘쳤다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왜 우유는 슬픔이고 기쁨은 조각보일까 라고 궁금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던 시. 작가 말따마나 우유 사러 간 여자는 돌아오지 않고, 벌집 모양 조각보는 구겨진 이 방 안에서 우유는 정말 슬픔이 되었고 기쁨은 조각보로 탄생되었다. 이 시 안에 있는 방 안에 앉아서 나도 밀크 잼 바른 토스트를 먹으면서 물어보고 싶다 - 당신의 조각보는 오늘 어떤 모양인지, 당신의 우유는 오늘 어떤 맛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