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발을 씻는다
버드나무처럼 길게 발가락을 내어 놓는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품고
울음을 참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오늘 당신과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이 캄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 발이 물 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눈이 없는 물고기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스친다
이제 더는 애쓰면서 살지 말아요
어떻게든 사는 건
하지 말아요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었으므로
이제 나는 눈 없는 물고기로 살거나 죽거나
당신 옆에 눕고 싶은 것일 뿐
상처 가득한 지느러미가 환해질 때까지
달빛이나 축내면서
어떤 당부도 희미해진 지금
말간 물이 발목에서 뒤척이는 건
마치 어떤 전생 같아서
몽유의 날들을 세어 본다
세어 보는 손가락이 붉어져서
물가의 나무들은 속으로만 발가락을 키운다
누군가 등을 쓰다듬으면서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자며, 어떻게든 사는건 하지 말자며 물 속에서 가만가만 서로의 발을 문지르고 서로의 마음에 스쳤던 기분. 부모님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시다. 너무나 열심히 살아온 그 분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했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