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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뮹뮹 Feb 15. 2017

물가에서 우리는

이승희

발을 씻는다

버드나무처럼 길게 발가락을 내어 놓는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품고

울음을 참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오늘 당신과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이 캄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 발이 물 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눈이 없는 물고기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스친다


이제 더는 애쓰면서 살지 말아요

어떻게든 사는 건

하지 말아요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었으므로

이제 나는 눈 없는 물고기로 살거나 죽거나

당신 옆에 눕고 싶은 것일 뿐 

상처 가득한 지느러미가 환해질 때까지

달빛이나 축내면서


어떤 당부도 희미해진 지금

말간 물이 발목에서 뒤척이는 건

마치 어떤 전생 같아서

몽유의 날들을 세어 본다

세어 보는 손가락이 붉어져서

물가의 나무들은 속으로만 발가락을 키운다



누군가 등을 쓰다듬으면서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자며, 어떻게든 사는건 하지 말자며 물 속에서 가만가만 서로의 발을 문지르고 서로의 마음에 스쳤던 기분. 부모님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시다. 너무나 열심히 살아온 그 분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했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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