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포르투→밀라노
** 런던 여행 1일 차
꽤 오래된 기억이기 때문에-무려 5년 전 일인 데다가 요즘은 어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눈을 감고 그때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처음 런던 공항에 도착했던 순간···낯선 이국의 겨울냄새가 느껴졌고 그것이 나쁘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저녁이었지만 사람들로 북적였고, 눈에 잘 띄라고 노란색 고무 이름표를 묶어놓은 캐리어를 금세 발견해 손쉽게 짐을 무사히 찾았고, 미리 준비해 놓은 답변을 되뇌며-별 질문이 아니어서 기억이 나질 않네-기다리다 악명에 비해 허무할만치 빠르게 게이트를 통과했고, 친절한 네이버 블로거들이 공유해 준 런던 가는 방법을 짜깁기 해서 만든 나름의 가이드를 들고서, 가이드 속 사진과 표지판을 비교해 보며 스파클링워터를 한 병 사들고(목이 말랐다기보다는 도착한 기념으로 뭔가 하나 사고 싶었으리라는 생각)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과 비슷한 지하철 역으로 가서 숙소가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고등학생 때 읽은 배우 배두나의 <두나의 런던 일기>에 나왔던, 자주 파업을 했고 그녀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라 운영을 하지 않는다던, 바로 그 런던 튜브를 타고. 혹시 소매치기가 눈독 들일까 지레 겁을 먹은 탓에 캐리어를 다리 사이에 끼고 힘을 준 채로, 머리와 목까지 연보라색 머플러를 칭칭 둘러맨 꼴이 독일 동화책에 나오던 군밤 팔던 할머니와 매우 흡사했고, 놀라울 만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목적지인 지하철 역에 도착한 뒤 지하철 역사 내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분위기에 휩쓸려 뜨거운 카페모카를 주문했고, 그것을 호호 불어 마시며 숙소를 향해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갔다. 밤이라 그랬을까, 문 연 가게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가 처음 예약한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아침에 고추장불고기를, 간식으로 김밥을 챙겨준다고 했다. 어딜 가도 한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 그곳을 선택한 건 절대 아니었고, 한인 숙소소가 개중 가격이 저렴했으며, 여러 명이 한방에서 이층, 삼층 침대를 쓰는 게스트하우스는 더 저렴했으므로 철저히 숙박비와 위치를 고려해 선택한 곳이었다.
나는 맨 위층 침대를 사용했는데 나의 관대한 위생관념으로 보더라도 얼룩과 머리카락으로 베개며 매트리스가 너무 더러웠기 때문에 유럽여행카페에 올릴 심산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정작 올리지는 않았다(던 기억이다).
짐을 풀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할 참으로 밖으로 나왔다. 다시 떠올려도, 사진으로 봐도 역시 인적이 드문 밤거리였다. 런던아이가 다리 건너 저 멀리서 반짝이는 통에, 술 취한 채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남성 취객 두 명-그런데 또렷한 한국어로 '92년생이 반말하면 기분이 나쁘냐 안 나쁘냐-를 따지며 나를 지나쳐 가는 탓에 여기가 한국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인스타그램에도 이곳이 마치 겨울 어느 밤의 서울역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기억이 난다.
런던에 온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국 경찰 옷을 입은 곰인형과 런던시계탑이 창 가득 전시되어 있는 기념품 샵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 숙소 화장실은-아마 대부분 유럽이 그렇겠지-우리나라 화장실과 달리 바닥에 배수구가 없기 때문에 욕조 안에서만 씻어야 했는데 처음엔 그걸 몰라서 몹시 당황했다. 내가 타국의 숙소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들어놓았다는 당혹감이란···, 어찌어찌 물을 처리하고, 화장실에 놓여있던 샴푸를 사용한 뒤 빳빳해진 머리를 말린 뒤 방으로 돌아와···바로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자긴 잤겠지 뭐).
이렇게 첫날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