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포르투→밀라노
11시가 거의 다 된 늦은 저녁에 침대에서 박서련 작가의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읽다가 이 이야기를 쓰려고 후다닥 거실로 뛰쳐나와 노트북을 열었다. 어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처음 거실로 나와 불을 켤 때까지는 분명히 뚜렷한 동기가 있었는데···, 막상 두줄까지 글을 쓰고 보니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두 칸짜리 책장 겸 장식장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의 핀란드 여행기를 흘낏 봐서 그런지, 박서련 작가가 홍콩 모사익에 갔던 게 생각이 나서인지(그 부분을 읽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회사 입사 전 편도티켓만 끊고 한 달간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왔던 동기 한 명이 문득 생각났고,
구글 포토에 다행히 19년도 사진까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입사연수 일주일 전 부랴부랴 떠났던 18년도 겨울의 짧았던 나의 유럽여행이 생각이 났고(연수 하루 전날 귀국했다), 그 여행소감을 간략하게나마 남겼던 인스타그램은 해킹당했고(해킹 전 계정을 돌려달라는 요청은 철저히 묵살되었으므로),
그렇다면 여기에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일련의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는 했으나 저런 생각이 발화가 되어 글을 쓰게 된 것은 또 아니고.
최종 합격 소식을 들은 입사 동기들은 너도 나도 해외여행을 떠났다. 향후 몇 년간 마음 편히 멀리 떠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것인지-물론 그 직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다들 필사적으로 여행을 갔는데, 여행을 가지 않으니 대유행에 나만 편승하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을 남겼다.
입사 전이라 아직 돈이 없을 텐데 다들 어떻게 여행을 가는 건가 했을 때 일명 '마통',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동기들 간 비법이 은밀히 공유되었다. 어느 은행이 잘 뚫어준다더라는 카더라 소식이 떠다녔고, 실제로 일부 동기들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소액을 융통해 여행을 떠났다. 카더라 소문 속 은행이 마침 집 근처였기 때문에, 만들까 어쩔까···하며 은행을 방문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기까지는 했으나(소문이 사실이었다!), 간이 작은 탓에 빌리지는 못하고 통장을 개설만 한 채로 쓸쓸히 돌아왔다.
학교에서 다들 입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나만 못 입고 있다는 얼굴로 온 집안에 음울한 분위기를 뿌리며 방에서 두문불출하던 나를 안타까이 여긴 모친이 유럽여행 갈 돈을 빌려주었고, 형부는 최적의 항공경로를 찾아주고 신혼여행 때 썼던 각종 물품-여행용 피우치, 도난 방지용 전대와 휴대폰과 손목을 연결하는 끈, 클립 등등을 아낌없이 주었으며, 부친과 오래 사귄 친구들은 혼자서 유럽여행을 가려는 나를 말렸다.
처음 혼자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의 반응이 어찌나 다들 비슷한지(네가? 안되지 않을까···? 대체 어쩌려고···).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데에-나에 대한 신뢰가 0에 수렴했다는 것에 대해-나를 모지리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보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이 친구들이 날 잘 알고 있네, 오히려 변태적으로 약간 흐뭇하기도.
지갑과 휴대폰을 포함한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물품들을 길바닥에 줄줄 흘리고 다녔던 것과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탄다던지, 지도를 볼 줄 모른다던지-길을 못 찾는다던지 등등, 가끔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풀어놓았던 에피소드와 웃길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친구들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과,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일까지도 나의 일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숱한 의심과 걱정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여행 가기 직전까지도(심지어 바로 전날에도) 위약금을 확인하며 내가 불러올 손해가 얼마인가를 셈하며 여행 취소를 고민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보다는-남들이 하도 열심히 해줘서 그런지 오히려 나는 없었던-빚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가, 원래 확신 없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다 보면 현타가 오게 마련이니까···아마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친은 네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인생 길게 보면 그리 큰 금액 아니니 취소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하라, 고 해줬고(그녀는 항상 그런 종류의 위안과 응원을 준다) 부친은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길에서까지 지금이라도 가지 말지 그러니···하고 날 설득하려고 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휴대폰 전원이 갑자기 나갔다. 배터리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고 얼마 전부터 껌벅껌벅, 하며 다잉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기는 하다. 출국을 곧 앞두고, 국내여행도 아니고 유럽여행을 가는 길에 휴대폰이 꺼져? 부친은 되려 반가운 얼굴로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했다.
부친에게 내가 3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점을 상기시켰지만(한국어, 중국어, 영어), 부친은 그중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잖아,라고 응수했다. 부친은 나의 언어는 물론이요, 위기대응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이런 위기가 내 삶에서 얼마나 많았으며,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서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부친의 휴대폰으로 갑자기 휴대폰 전원 나갔을 때 해결방법을 찾고 콜센터에 연락을 하며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동안 휴대폰 전원이 다시 돌아왔다. 단순히 초기화를 했던 것 같은데···어쨌든 전원이 살아난 휴대폰을 들고 부친과 작별인사를 하며 출국장으로 나갔다.
자리에 착석하기 전까지 수화물 검사 때 벗은 집업후드를 찾아가지 않아 되돌아가긴 했지만, 자리를 잘못 찾아 외국인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침내 비행기가 무사히 떴다. 출국 단계에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