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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Aug 21. 2023

혼자 떠나는 첫 유럽여행(런던)-05

친구 회사를 견학 가서 생긴 일


** 4일 차 런던


런던에서의 4일째 날이 밝았다. 연두색 사과를 뽀득뽀득 씻어 자르고 어제 먹고 남은 나타와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오늘은 토스트 대신 이것들로 아침을 먹을 참이다. 접시에 사과와 나타를 담고, 우유를 한 컵 따라 창가로 가져간다. 데리고 다니는 흰 쥐 인형을 같이 창가에 앉혀놓고 아침식사 사진을 한 장 찍은 다음, 오독오독 사과도 먹고 입 안에서 파스스 부서지는 달콤한 나타도 마저 다 먹는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5개를 쌓아 올린 다음, 빨간 끈으로 네 방향으로 감은 뒤 맨 위에서 리본으로 매듭을 지어 묶는다. 이 라면 한들이는 오늘 만나는 친구 M에게 줄 선물이다. 매운 크림라면, 치즈라면, 미역국라면 등 한국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제품도 껴있고 유행이 된 라면도 껴있다. 이것들 다 한인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한국인한테 라면보다 맛있는 것이 없으리라는 믿음이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알게 된, 지금 런던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M은 한 해 늦게 들어온 동아리 동생들의 고등학교 친구였고, 우리는 동아리방에서 함께 점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은 다음 매점에서 월드콘을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사이였지만, 둘이서 먹은 게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먹은, 친구의 친구에 가까운, 외국에서 굳이 얼굴을 볼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하기에는···굳이?라는 질문을 저 쪽에서 할법한 사이였으므로, 나는 그녀가 나를 만나주는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마운 참이었다(누가 먼저 보자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친절한 그녀가 먼저 제안을 건네었는데 눈치 없이 내가 그것을 덥석 물어버렸다는 기억이···나는 것 같기도).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파격적으로 50% 재고 할인을 하고 있다는 카메라 가게-아마 중고나 빈티지-외관 사진을 한 장 찍고 그대로 계속 걸었다. 카메라를 사고 싶었지만 나는 좋은 카메라를 잘 고르는 법을 알지 못했다.






M을 만나 5개 묶음짜리 라면들 이를 건네주자 M은 고맙게도 기뻐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M이 미역국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역국 라면을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미역국에는 떡이든 면이든 뭘 넣어도 맛있다는 게 내 오랜 주장이고, 먹어보지 않았지만 당연히 맛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M을 따라 영화 <노팅힐>을 촬영했다는 곳 근처로 가서 파스텔색 가게도 구경하고 시장에도 갔다. M은 시장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나는 돈과 여권 복사본은 전대에 넣어 배 안에, 휴대폰은 도난 방지를 위해 끈을 달아 손목에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에 꽤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조언에 따라 어깨에 둘렀던 가방을 가슴 쪽으로 안았다.


시장 이곳저곳에서 팬지꽃을 가슴이나 모자에 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팬지꽃은 택시에도 달려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꽃은 팬지가 아니라 양귀비였고, 영국에서는 11월에 추모일요일라고, 전쟁에 헌신한 군인 또는 민간인을 추모하는 날이라 그 뜻으로 양귀비를 단다고 한다. 나는 M에게 런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그리고 영국인이 일으킨 전쟁과···그리고 추모일요일···에 대해 들으며 M을 따라 1달러짜리 노란 망고를 산 뒤 그곳을 빠져나와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M은 나를 맛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드디어 피시앤칩스라거나, 미트파이라거나···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기름을 끓이고 냄비를 데워온 유서 깊은 맛집엘 간다는 기대로 그녀를 따라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척 봐도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세련된 쌀국숫집이었다. M은 런던에서 맛있는 걸 먹으려면 다른 나라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날 웃겼다(내가 런던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게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였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쌀국수를 먹은 뒤 나와 M은 역시 전날처럼 블랙프라이데이로 사람이 몰린 거리를 쏘다니며 쇼핑몰과 마트를 구경했다. 자라에 들러 우리는 구두를 구경했고, M은 자라에서 파는 신발이 놀랍게도 꽤 편안하며, 이곳에서 산 10cm 높이의 힐을 잘 신고 있다고 했다. 마침 면접 보러 다닐 때 신었던 투박한 검은색 구두를 빼면 회사에 신고 다닐 구두가 하나도 없던 참이기도 했다. 과연 신발 안쪽에 쿠션이 있어 푹신하고, 높은 것 치고 안정감이 있었으므로 7cm짜리 베이지색 구두 한 켤레를 약 50달러 주고 샀다.




자라에서 나와 커다란 M&M 초콜릿 캐릭터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마트에서 물 한 병을 산 다음, 그녀가 회사를 구경시켜 주기로 해서 M의 회사로 갔다. M의 회사에 들어가려면 여권을 보여주고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화상카메라 같은 곳에 얼굴을 들이대면 바로 얼굴을 찍고 입장티켓 같은 것에 얼굴을 인쇄해 주었다. 그렇게 찍은 것치고···굉장히 잘 나왔기 때문에 아직도 추억과 기념 삼아 간직하고 있다.



M의 회사는 마블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아이언맨이 허공에 모니터를 띄어놓고 일할 것 같은 최첨단(이 단어도 좀 구식이려나)을 달리는 어쩌고 기업 같았다. 아이패드에서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농도, 크기를 조절해서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었고, 로비 테이블에 과일이 쌓여 있었으며, 여기서 끼니를 해결해도 될 것 같은데···싶을 만한 과자와 시리얼을 비롯한 간식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뷔페에서 볼 법한 콜라, 오렌지 주스 등의 음료와 얼음이 나오는 기계까지.







사무실 층고와 넓이며 통창에서 보이는 런던의 야경도 그랬지만-테라스로 나가면 세인트 성당이 바로 보였다-모든 것이 몹시 비현실적이었다. 여기서는···절대로···미생을 찍을 수 없어······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 얼이 나간 상태로 M이 테이블에서 잘라주는 서양배를 먹었다. 그것이 장식용 가짜 과일이 아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충격을 먹으며······. M은 자기가 일하는 책상을 보여주고 기념품 삼아 회사 이름이 새겨진 공책과 볼펜, 과자 몇 개를 챙겨 주었다.




회사를 견학하고 난 뒤 받는 상품 같은 것이었다. 나는 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냉큼 받아 챙겼다(입으로는 분명히 아, 이래도 될까···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손은 이미 가방을 벌려 그것들을 담고 있었다). M의 관대함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더해져서 나는 넉넉한 견학선물을 품에 안고 다시 M을 따라 회사를 나왔고 유명한 포토스폿이라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리에서 파는 양념된 땅콩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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