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과 전애인과의 상관관계
마스다 미리 만화 <나의 누나>를 읽다가 이 책의 발행 연도가 2014년으로 약 10년 전인데 2023년도에 읽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라도 다르고 (이웃나라 먼 나라) 나이 차이도 꽤 나는데 마스다미리 그녀가 그린 만화에 이렇게 공감하는 걸 보면, 세계도 인간도 세월이 흘러도 그다지 많이 변하는 것 같지 않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기원전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학교를 빼먹은 아들자식에 대한 질책과 요즘 젊은이들은 도무지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는 꾸지람을 굳이 새긴 걸 보면, 기원전인데요, 2014년이면 그리 먼 일도 아닐 것입니다.
이런 걸 읽으면 좀 안심이 됩니다. 어느 세상이던지 약간씩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 때문일까요. 사람 다 똑같아,라고 모르는 사람들의 불행을 점치며 내 불행을 위로하고 싶어서일까요.
오늘도 전에 다니던 회사 (아니라니까...) 로고가 새겨진 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걸 보고 아 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유난을 떠는 건 저런 마주침이 예상치 못한 순간 불시에 당한 습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가는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듭니다. 그냥 놀러는 잘 가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유난엔 내가 저런 델 다녔다는 우쭐함도 좀 섞여 있습니다. 20대의 성취를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
겨우 이런 것 밖에 없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갓구글이나 페이스북이라도 다녔으면 모르겠는데 말이죠. 쇠식판에 찬기 가시 않은 냉동 김말이 튀김이
점심으로 나오던 그런 회사였는데도.
(좋은 회사의 조건엔 양질의 점심이 들어간다고 굳게 믿습니다)
저 로고를 볼 때마다 증과 애가 마구 뒤섞입니다.
전애인과 전 직장은 어디서도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일 것입니다. 그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뉘지 않을 거라는, 이를 바득바득 가는 분함이 치미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우연히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우리의 헤어짐이 구질구질했던 연인의 이별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휴직할 때 헤어지자고 말도 안 했는데 차인 기분이었거든요. 헤어지자는 쪽은 분명히 나였는데 어쩐지 내가 참혹하게 차였으며 상대는 내가 먼저 말해주기를 은근히 기다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화 내고 눈물이 나고 상실의 5단계를 겪은 것은
오로지 나, 이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것은
나뿐인 것 같다는 그런 슬픔입니다.
그러니 길이고 어디에서고 그 로고를 마주할 때마다
난 이렇게 가슴 아파하며 사는데 넌 잘 먹고 잘 산다 이거지 하는 분함도 조금 있는 것 같고요. 굳이 이런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말이죠.
쌈빡하게 과거를 청산하고 모두 다 훌훌 털고 떠나버리고 싶지만 아침뉴스에서 아이엠에프보다 큰 거 온다는 그런 자극적인 뉴스를 보기도 했고... 순간 아,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다니까요.
(중국판) 드라마 보보경심에서 8 황자가
이생의 마지막 이별을 앞둔 약희에게
울지 말고 떠나라고,
이번 생은 끝났다고,
떠난다면 모두 잊으라고 하거든요.
오늘은 어쩐지 자꾸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