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바사를 아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무라카미 T (부제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를 읽다가 문득, 쌀을 설설 씻어 안쳤는데 밥이 되기까지는 15분 정도 남은 상황이고, 나 또한 귀여운 티셔츠를 굉장히 좋아해서 이것저것 사고 있으니까, 하는 마음도 들고.
작가가 수십 년간 모아 온 티셔츠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있으며 자기 자신도 티셔츠 사모으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왜 제목을 술에 관하여라고 지었느냐고 묻는다면-아무도 묻진 않았는데-, 글쎄, 방금 내가 읽은 페이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를 마셨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스키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나는 그 어떤 종류의 술도 즐기지 못한다(않는다,라고 쓰려다 마음을 바꿨다). 간에서 도무지 받쳐주지를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 분해를 좀처럼 하지 못하는 간 때문에 한 모금은커녕 맥주 몇 모금도 버겁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얼굴도 불그죽죽해져서 아주 못생겨진다. 미디어 속 양 볼만 붉게 달아오른 귀여운 배우의 얼굴을 보면 '저건 다 거짓이라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술에 취한 사람의 얼굴과 행동은 저렇게 깜찍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므로 어릴 때부터 냉장고에서 술 구경을 해본 일이 없다. 간혹 술이 선물로 들어오더라도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쓴 채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발효되거나 버려지곤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남자친구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냉장고를 보고 경악했다. 그의 냉장고에······글쎄······아사히 맥주가 무려 두 캔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알코올 중독자라도 되는 것처럼 뒤숭숭한 심정이 되었다. 집에 술을 사두는 사람이라니······이런 사람을 만나도 괜찮을까······그런 걱정이었다.
그런 그와 소주 1병과 맥주 1병, 사이다 1병과 두루마리 휴지를 식탁에 둔 채 대치 상태로 앉았던 적이 있다.
내가 그에게 암바사(소주 1 : 맥주 1 : 사이다 1 비율로 말아서 휴지로 잔 주둥이를 막고 테이블 위에 탕 내려쳐 한입에 삼키는 술)를 말아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암바사를 기깔나게 말던 친구 J를 대학시절 내내 동경해 오던 참이었다.
그녀는 휴지로 잔 주둥이를 틀어막은 후 앙칼지게 잔을 세게 테이블로 내려친 다음, 젖은 휴지를 벽에 내던져 찰싹 붙인 뒤 망설임 없이 술을 입 안으로 털어 넣는 영웅호걸의 기백을 보여주곤 했다.
술자리에서의 그녀는 관우, 장비 부럽지 않은 맹렬한 기세로 암바사를 말고 적의 가슴팍에 창을 내던지듯
휴지를 던지곤 했다.
그날 우리는 이 관계를 계속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사안을 앞둔 사람들이었고, 술을 마시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자는 계획이었다. 술 마신김에······그래······여차하면······그럴······야한 생각도 좀 있었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암바사를 말기 위해 노력했다. 이게 처음이 아닌 것처럼. 남의 집 벽에 느닷없이 젖은 휴지를 내던질 수 없으므로 숟가락으로 탕, 하고 소주와 맥주, 사이다를 섞고 간을 보겠다며 그것을 한 입에 꼴깍 마셨다.
"······아무렇지 않잖아?"
기세를 몰아 바로 한 잔을 더 말아 다시 꿀꺽 마셔버렸다. 나는 허세를 부리느라 그때까지 내 주량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내가 '잘' 못 마신다, 정도로만 나를 파악하고 있었다. 두 잔을 연속해서 마시는 나를 그는 그저 따듯하게 바라고 있었다.
"오늘 술이 잘 들어가는데?"
기세를 몰아 나는 한잔을 더 마셨다.
(소주잔으로 마시는 중이다)
이제 그도 한 잔 마시려는 참이라 소주병을 가져가 그의 잔에 따를 때, 나는, 나는 그대로 테이블 위로 픽 하고 고꾸라졌다. 곧 의자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가 이번에는 바닥에 어 풀어져 머리가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해댔다. 그는 당황하여 허겁지겁 테이블 너머 내게로 달려와 그의 자취방 바닥에 엎드린 나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나는 갓 태어난 기린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그를 환장하게 만들었고, 소주 1병과 맥주 1병과 사이다 1병은 처음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테이블 위에서 축축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영어로 온갖 감탄사를 뱉어내며(몹시 당황하면 영어가 튀어나온다고 한다) 집에 가겠다고 맨발로 문을 향해 기어가던 나를 말렸던 그와, 그날 진솔한 대화는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결혼했다.
우리 집 냉장고엔 아사히 맥주가 서너 병 정도 늘 구비되어 있으며 찬장에는 선물로 받은 와인과 그가 이마트에서 사 와 하이볼을 만들 때 쓰는 몽키 어쩌고 하는 양주도 있다.
술을 마시는 문제로는 다투지 않는다. 그가 하는 것은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술꾼이라며, 사기 결혼을 했다며 가끔 장난 삼아 그를 조롱하기는 하지만······.
대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당시엔 술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첫 MT, 새내기 모임, 과 모임 등등 모든 자리가 술, 술, 술이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도 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술게임에서 주사위 한 번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술 한잔을 마셔야 했으며,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여지없이 에에이-하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누가 대신 마셔주기라도 하면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거나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해질 장기자랑을 해야 했다.
그럼 술자리엘 안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따져선 안된다. 술을 안 마시는 모임이 있어야 말이지!
학생들은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술을 마셔댔고 나는 그때마다 마시지도, 안 마시지도 못한 채 곤혹스러웠다. 그때부터 술을 마시면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술 마시기는 싫고, 술을 안 마시면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운 처지가 너무 슬펐던 탓이다.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대학을 왔는데, 겨우 온 대학에서 이런 어려움을 만날 줄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동아리 모임에 처음 나갔고-당연히 술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술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못 마신다고 하니 그대로 두었다. 술게임에서 걸린다고 해도 생당근을 씹게 한다거나 스쾃를 시킨다거나 하는 벌칙이었다.
술을 마셔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압박도 없으니 한 번 술자리에 앉으면 파할 때까지는 먼저 자리를 뜨지 않았고 술자리에서의 내 엉덩이는 아주 무거워져서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도 많았다.
그렇게 눌러앉게 된 동아리를 나는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들락날락거렸고 그때 사귄 친구들과 여전히 잘 놀고,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