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라이프 14일차
어릴 때부터 할로윈을 좋아했다. 스릴러를 즐기기도 하고, 여러 기념일 중에서도 할로윈은 평소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태원 사건 이후로 할로윈을 즐기는 문화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도쿄에 가기로 했을 때는, 다시 한번 그 할로윈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지 내심 기대가 됐다.
* 제가 좋아하는 할로윈은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서 할로윈 파티와 디저트를 즐기는 것이기에, 기대하시는 시부야 할로윈 거리의 북적임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내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절반 정도였던 것 같다. 확실히 한국보다 더 많은 가게에서 할로윈 행사나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긴 했지만, 모든 분위기가 할로윈을 맞이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정도였던 것 같다. 또한 도쿄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동료도 할로윈 분위기가 예전만큼 풍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할로윈 당일날 회사에 가는 출근길 역시 평범했다. 약간의 기대감에 한국 동료와 함께 돈키호테에서 코스튬 머리띠를 사서 거리에 나섰지만, 지하철 안 무뚝뚝한 직장인들의 표정을 보고 머리띠는 조용히 가방에 넣었다.
다만, 일본 지사가 위치한 위워크에서는 할로윈 인형을 찾는 보물찾기 이벤트 같은 행사가 많이 열리고, 회사 내부에서도 할로윈 파티를 열어줘서 일본 현지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즐거운 할로윈을 보낼 수 있어 매우 행복했다.
생각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아키하바라나 시부야 같은 큰 도심이 아닌 곳은 원래 할로윈을 크게 챙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이태원 참사 이후 변화가 생긴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 동료와 함께 식사하며 일본인들의 할로윈 인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동료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조심하는 분위기와 함께 정부의 통제가 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 이후 할로윈 문화 자체가 많이 축소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시절 전에는 ' I ' 성격 탓에 시부야 같은 혼잡한 곳엔 가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집에서 코스튬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할로윈을 즐겼다고도 이야기해 주었다.
시부야는 어떨까? 나 역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실시간으로 거리를 촬영해주는 유튜브를 보니 여전히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과 인파가 많아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할로윈에 대한 인식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할로윈을 사랑하고, 코스프레 강국인 일본에서 독특한 할로윈을 기대하는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시부야에 모여드는 듯했다.
이 글은 단순히 내가 본 도쿄의 모습일 뿐이라,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할로윈 이벤트가 활성화되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잘못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도쿄의 할로윈이 나에게는 전부였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다. 또 다른 일본 지역에서 할로윈을 경험한 사람이나, 한국이나 일본 외 다른 나라에서 할로윈을 즐긴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퇴근길 우연히 찾은 따뜻한 유렁 우동 사진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