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0
혹자는 남편을 남의 편이라 칭하며 거리감을 두기도 한다.
나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았다.
시댁식구들도 결국에는 남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결된 카테고리일 뿐이지 않은가...
내 남편은 착하고 순하고 어디 가서 싫은 소리 한마디를 못하는 그저 스스로 감내하고 사는 삶에 익숙하고 편하게 길들여진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그를 그런 존재로 키우며 길들여 놓고는 가끔씩 넌 의견도 없냐 의지나 욕심도 없냐며 타박을 하기도 한다. 그가 뭘 하든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모 얼굴에 먹칠이나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살아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필요할 때 언제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에서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서로 선을 긋고 사는 느낌이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부모형제들에게도 말 못 할 사정들을 껴안고도 그 주변을 그저 어슬렁 거리며 필요하다면 기꺼이 가서 자기 몫은 해내려 애쓴다. 그게 자신이 부모에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누구도 그에게 욕심이 많다거나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간의 답답함과 똑 부러지지 않아 보이는 허술한 면모는 상대에게 오히려 편암함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빠가 엄청 대단하고 뭐든 잘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아이들에게 시아버지는 '너희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냐?'라며 아이들 보는 앞에서 비웃음을 보였다. 내가 시부모를 더 이상 깊은 관계로 더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이유이며 그들이 생각하는 대단한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더 이상의 관계에 진전이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이가 드셔도 그중 그나마 똑똑해 보이는 장남한테나 의지하고 사시면 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댁에 가는 걸 꺼리게 되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그분들이 아실지 모르겠다.
가족을 무시하고 형제들과 등지고 자신이 해준 것만큼 받아야 되는 분인걸 알기에 더 이상 받는 것도 어느 순간 사라져 갔다. 돈이 아무리 많고 나름 베풀고 사셨다지만 결국엔 자신이 해준걸 하나하나 따져가며 계산하고 사시는 분인걸 알기에 그나마 겉도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이 먹고 마시데 쓰시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시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많이 고생하고 사신만큼 더 많이 누리시면서 남은 인생을 사시면 될 것이다.
다시 남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남편은 말이 적을 뿐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대신 함부로 내뱉지 않고 함부로 결정하지도 않으며 섣부르게 덤벼들지 않는 사람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비난을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고집은 있으며 나름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는 기준도 있는 것 같다. 그의 기준에 나의 어떤 부분이 들어맞아 이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난 그저 나보다 그가 날 더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결혼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도 있었기에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그보다 더 빨리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착하고 순한 사람과 그렇게 한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람에게는 양면? 다면? 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그렇고 착하고 순한 사람에게도 존재하는 양면이 있다. 부부는 그런 부분들을 어쩌면 핏줄을 나눈 부모형제들에게 보다 더 많이 드러내며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또 다른 한 세대의 가족을 나름의 울타리로 형성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년 가까이 살다 보니 그런 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서로 품고 사는 이야기들이 넘쳐날지도 모를 일이다. 부부란 정말 무서운 관계이다.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고 서로 입 다물어주는 것이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비법일 수도 있다. 암묵적 비밀유지계약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른들도 어쩌면 알고 있으리라... 오랜 세월 당신들이 거쳐온 과정들을 다음 세대인 우리가 지나가고 있으니 그저 지켜봐 주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리라.
내 남편은 착하고 순한 사람이다. 난 어디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고... 그게 우리다....
남편은 내가 나가서 일을 하길 바랐다. 취미활동도 좋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내심 이왕이면 일을 해서 경제력을 발휘해 주길 바라는 게 느껴졌다.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갈수록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몇 년간 매일을 매일처럼 앞도 뒤도 없이 반복하면서 나태하게 지내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태그커피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반겼던 사람이 그였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조건적인 지지였고 나 자신보다 의욕적으로 보였다. 두구동이 집에서 1시간가량 거리인걸 감안하고도 그는 다 괜찮다고 했다. 애들을 같이 챙겨봐 줄 거고 집안일도 더 많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거의 20년 만에 사회로 나와 난생처음 카페라는 자영업을 하게 된 나에게 가장 많이 용기를 준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뭘 하는지 cctv를 통해 틈틈이 모니터링할 것이고 매출이 어떤지 매일 확인할 것이다. 내가 카페 안에서 혼자 끼니를 어찌 때우는지, 건강은 챙기며 지내는지 그에게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 것이다. 자궁 근종 수술 후 이틀 만에 카페 인수받기 위해 매일 나와서 3-4시간씩 일을 하고 얼마 전 외래 진료 예약을 추석 전으로 미뤘다고 말했음에도 그에게 그런 게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그날 손님이 많았는지 매출이 괜찮았는지가 더 중요한 포인트인 사람이다. 카페 인수 후 통증이 계속되면 안 되니 그전에 수술하길 권했던 것도 그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수술날 자신이 동갑 모임을 못 갔고 카페 인수 후에도 애들 챙긴다고 못 가게 된 것을 못내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희생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 자신의 매일은 그에게 중요치 않다. 그건 내 몫이고 자신이 안 보이는데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각자 서운한 게 있어도 그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신 때문에 등 떠밀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좋아서 즐기면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매일매일의 매출은 나 자신보다 더 많이 걱정하고 챙기는 사람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등 떠밀려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를 돕고 싶었고 힘든 걸 나누고자 시작한 건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시간이 자유로워 보였고 벌이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누구도 등 떠민 사람은 없지만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가장 용기를 줬던 사람이긴 하다.
그는 착하고 순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랑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