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2023.09.18

by 아일랜드


태그커피의 오전 손님들은 이제 거의 없다. 언젠가 따로 소개할 다움병원 낮병원에 다니시는 의리 있는 환자분과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거래처에 가져갈 아메리카노 5-6잔을 사가시는 사장님 이렇게 2분이 그나마 고정적으로 의리를 지켜 와 주시는 분들이다. 아침 커피는 국룰인 것을.... 대부분의 손님들은 2천 원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집으로 발길을 옮겼을 것이다. 가격차이도 꽤 나니 그럴 수밖에 없지 하면서도 오전의 한가함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태그커피도 아메리카노 가격을 2천 원으로 낮추고 맞대응해야지 살아남는다고들 한 마디씩 하신다. 아메리카노 한잔 기준 2샷을 고수해 왔는데 1샷으로 줄이고 가격을 낮춰야 하나 사실 고민도 했었다.


분명 단골들은 맛의 변화를 눈치챌 것이고 어쩌면 그나마 있던 단골들까지 잃게 될 수도 있는 문제라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난 그냥 이런 한가함도 즐겨보려 애쓰고 있다. 즐기는 자를 어찌 이길 수 있으랴~


수중에 돈은 모이지 않을지언정 내 마음과 몸과 정신이 채워지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아침에 잠에 취한 아들을 깨워 겨우 요깃거리로 배를 채워준뒤 샤워실로 보내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한다. 그래봐야 원래는 전혀 하지 않던 화장을 조금 하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아들이 씻고 나오길 기다린다. 녀석은 어떨 땐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어떨 땐 말 붙이기 무서울 정도로 틱틱거리며 말꼬리를 다 잘라버린다. 내가 카페 일을 시작한 게 녀석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쁠 것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녀석의 그런 퉁명스러운 표현이 이상하게 긍정에 더 가깝게 다가왔다. 7시 반까지 1층 로비로 나오라고 말해놓고는 먼저 내려와 주차장서 차를 빼서 로비 앞에서 잠시 기다린다. 녀석은 일찍 학교를 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노골적으로 온 얼굴과 몸으로 표현하면서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 나온다. 가끔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거리며 차에 탈 때도 있다. 난 녀석의 얼굴도 만지고 싶고 손도 잡고 싶지만 녀석의 눈치를 살피면서 맘에도 없는 잔소리부터 먼저 몇 마디 던져본다. 녀석은 가끔 기분이 괜찮으면 별 거부 없이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보통 대부분은 짜증을 내면서 거부한다.


녀석을 학교 정문 앞에 후다닥 내려주고는 고속도로를 올린다. 라디오에서는 <굿모닝 FM 테이입니다> 반반한 퀴즈가 시작된다. 10문제를 집중해서 풀다 보면 차가 좀 막히더래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출근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 두구동까지 왕복 1시간 반이상을 운전하며 보낼 생각을 했을 때는 영어회화 공부라도 해야지 싶었는데 라디오를 듣고부터는 그나마 몇 번 들었던 영어회화 팟캐스트도 듣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동생과 퇴근길에 한 시간씩 통화를 할 때도 있고 부모님과도 통화하다 보면 차 막히는 퇴근길도 금방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고속도로로 출근하면 카페에 일찍 도착한다. 옆에 새로 생긴 가게가 8시부터 오픈한다고 하니 모르는척하면서도 나름 신경이 쓰이는 건지 나의 출근시간도 덩달아 빨라지는 느낌이다. 8시 반 오픈 기준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거의 8시 10-20분에는 오픈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이때부터 기다림의 지루한 시간들이 연속된다. 월요일 아침 카페인을 찾아대던 손님들은 어느 순간 일절 가게에 얼씬을 하지 않는다. 다들 옆가게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로 카페인을 수열 하면서 월요일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씁쓸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태그카페에는 매일 아침 9시 10-15분이면 의리의 환자분이 나타난다. 요즘은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정말 태그커피에는 이분처럼 매일매일 의리를 지켜 와 주시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가까운 가족들보다 진심으로 카페를 걱정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힘을 많이 얻고 있다. 내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이런 기분은 아마 집에만 있었다면 알 수 없는 것이리라.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카페 손님들은 많이 떠나가고 매출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욕심내지 않고 가려고 한다. 섣불리 메뉴를 추가하거나 변경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격을 낮추지도 않을 것이다. 천천히 사람들을 더 관찰하고 싶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내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해 나가야 될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갈피를 잡아 나가고 싶다.


대단히 큰 성공을 바라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월세 내고 재료비, 경비 빼고 친정부모님께 용돈 조금 드릴 정도의 여유만 남아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 군것질거리 사는데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그걸로 현재는 만족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기에 생활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집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서칭과 쇼핑으로 소비하던 돈이 줄어드니 오히려 그전보다 부족함 없이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나의 상황과는 다르게 남편은 아마도 힘든 상황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표현을 잘하지 않고 말도 아끼는 편이라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서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자신 뿐이라는 걸 갈수록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아끼고 챙겨야 하며 내면을 충실히 해야 하며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나 자신처럼 나를 생각해주지 않으며 기대해서도 안될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를 그토록 생각해 본 적이나 있단 말인가....


오늘은 바람이 한결 선선해지고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찬기운마저 느껴진다.


두구동의 가을은 또 어떨지 한 계절 한 계절을 나름 즐겨봐야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내가 태그커피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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