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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1. 2024

봄날의 두구동

2024.04.12

지나가던 동네분이 주고 가신 프리지어의 밥알 같은 꽃봉오리들이 만개하여 카페 안을 향기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아침에 커튼을 열며 살짝 코를 갖다 대고 그 향기를 듬뿍 들이마시곤 한다. 오늘 하루도 이 좋은 향기같이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거라는 믿음이 가득해진다. 시간은 정말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내가 카페를 할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의미가 컸으며 집에만 있던 내가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 지극히 객관화된 판단이었음에도 그 판단은 오류를 맛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 직접 부딪혀보니 그것을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전혀 들어맞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내속의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감지하기에는 스스로 너무나 둔감했고 그저 조용히 울타리 안에서 숨죽이며 사는 것이 더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20여 년 만에 나온 바깥의 세상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일상의 내 고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콩나물, 두부 가격이나 따지면서 살림살이나 하던 나는 참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았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 님은 불혹이 넘어 등단을 했고 펜하나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가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했다. 마치 할머니가 조곤조곤 속삭이듯 들려주는 이야기들 같아서 금세 빠져들고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던 것 같다. 나는 두렵고 무서워하면서 한걸음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에 온 힘을 다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시선을 무시해야 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신념처럼 가지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혼자힘으로 맞서내야 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마주하게 되니 그녀의 일생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이 40이 훌쩍 넘어 카페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이렇게나마 운영해 가는 나 자신 또한 나중에 더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 첫걸음 같은 것이다. 더 용기가 필요할 것이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만이 더 신중해지고 더 노력하며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봄날의 두구동은 설렘이다. 다가올 내 인생에 대한 설렘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도 즐겁게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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