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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1. 2024

콩깍지

2024.04.05

연인들 사이에서의 콩깍지도 있지만 살다 보니 사람들 관계에서도 콩깍지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서로 거리를 두고 선을 지키면서 대하던 관계가 만남이 잦아지고 서로 대해 알아갈수록 조금씩 그 선을 넘나들고 예의를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나 또한 조금 친해졌다고 조금씩 말을 건성으로 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경우를 당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말보다는 태도에 더 상처받기도 하는 것 같다. 호의를 베풀면 그게 당연한 듯 기대하게 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 또한 누군가가 꾸준히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를 처음에는 고맙고 감사히 여기고 그렇게 대하다가 어느 순간 그 호의가 줄어들거나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실망하거나 섭섭해서 서먹하게 대한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카페의 장점이자 단점은 영원한 단골이 없다는 것이다. 순간 돌아선 마음과 입맛은 다시 되찾기 힘든 법이다. 마치 카페에 자신의 지분이 있는 것 마냥 수시로 드나들던 사람들도 나의 시큰둥한 반응 때문인지 아니면 근처 새로 생긴 카페의 영향인지 단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나둘 떠나버렸다. 1년 만에 방문해서 앵무새(전 사장이 카페에서 키우던)를 찾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드문드문 오면서 쿠폰은 잊지 않고 찍고 가는 열정을 보면 그것도 카페에 다시 오겠다는 무언의 약속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카페라는 공간이 이상하게도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새로이 드나들게 되는 사람이 생기는 곳이다. 무엇인가 더 특별해진 것도 없고 달라진 것이 없어도 그렇게 알아서 물갈이가 되는 곳인 것 같다. 좋은 분들이 많이 드나드는 카페이길 바라지만 그것도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더 정이 가는 손님이 있는 반면 진짜 눈길조차 주기 싫고 말도 오래 섞고 싶지 않은 손님들이 있다. 또 처음엔 정이 가서 더 챙겨 드리고 하던 손님들도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고 속내를 내보이기 시작하면 내 눈에 씌워졌던 콩깍지가 하나씩 벗겨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생각하며 괜히 고민하고 상처받기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두구동의 작은 동네 카페 태그커피가 좋다.

마당에 심어둔 쪽파 한 단을 비오기 전에 뽑아두었다가 비 오는 날 아침 굳이 직접 가져다주고 가시는 할아버지와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트렁크를 열어 프리지어 화분을 주시면서 향기가 좋을 거라고 잘 키워보라고 하시는 사장님, 통창으로 지나가면서 손님 있나 없나 보고 인사해 주고 가시는 동네분들, 늦은 오후 천 원짜리 두장을 손에 꼭 쥐고 카페에 들러 왜 오늘은 늦게까지 하는 거냐고 물어봐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아아 한잔을 사가시는 할머님,,,,

나는 이런 정겨운 두구동의 태그커피가 좋다. 손님 없이 한가한 카페를 걱정해 주시고 다음 손님이 오실 때까지 자리를 채워주시다가 손님 이어주고 가신다는 할아버지를 보면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다. 커피를 사가는 손님들에게 자주 오라고 주인인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인사를 해주시는 것도 너무 정겹고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힘들지만 웃을 수 있는 나날들이라 버틸만하다. 누군가는 등을 돌리지만 누군가는 나를 바라봐주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별거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콩깍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진정한 것을 볼 수 있다. 꽉 찬 알맹이인지 속 빈 쭉정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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