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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1. 2024

겨울나기

2024.03.29

태그커피의 겨울은 추웠다. 카페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고 외롭고 서러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춥고 서러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어느새 햇볕이 따스하게 드리우고 꽃봉오리가 움트고 있다.

더 좋아지거나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이 겨울을 오롯이 혼자서 버텨낸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고 다행스럽고 포기하지 않고 버틴 나 자신에게 내심 놀라고 있다. 모든 것이 내 탓만 같았던 힘들었던 순간을 지나 나 자신을 도닥이고 스스로에게 힘을 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 충만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카페 초기에 나와 결이 맞지 않아 삐꺽거리던 손님과 주변분들은 이제 거의 정리되고 카페에도 더 이상 방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손님을 밀어내게 된 꼴이 되었지만 뭔가 카페가 진짜 내 공간,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나만의 단골이 생기고 또 그 단골들도 떠나기도 하고 다시 생기기도 하는 카페의 일상에 이제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변함없는 사람은 진짜 손에 꼽을 수 있다. 일주일에 1-2번씩 거래처 방문하신다고 오셔서 커피를 5-6잔씩 사가시는 쌀유통하시는 사장님과 카페인수 초기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고 거의 매일 방문해 주시는 백사장님, 휴게시간에 짬짬이 와서 쉬다 가시는 다움병원 조리실 이모님들, 카페뒤쪽 시계집 사모님, 일명 깡통이라 불리는 컨테이너 아지트에 모여 계시는 어르신들, 두구동 주민센터 팀장님과 일 봐주시는 어르신, 주민센터의 이쁜 여자 직원들, 청산이라는 회사이름으로 쿠폰을 찍고 있는 단발이 더 잘 어울리는 아가씨,,, 아마 이보다 더 있을 수도 있다. 모두 태그커피의 겨울나기에 한몫을 해주셨던 분들이다. 이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난겨울은 더 끔찍했다. 남편과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가슴 철렁거리는 시간을 보냈고 아들은 원하던고등학교 입시에 모두 실패하고 일반고를 진학하게 되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과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부모님께도 마음속 깊숙이 참고 참아왔던 모진 말들을 쏟아내고 뒤돌아서게 되었다.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회가 되었을 때 내입장을 한마디라도 더 전달하고 싶었다. 내게 되돌아오는 건 그보다 더 모질고 더 비참한 악담들밖에 없었지만 나는 이제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분들의 도움으로 여태껏 살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무언가 바라고 산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 고통 내 아픔 알아봐 주고 걱정해 주고 사셨던 분들도 아니었다. 이미 끈은 가늘어졌고 더 이어질 껀덕지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남은 인생에서 더 이상 그분들을 생각하고 고려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이제 내 부모를 먼저 챙기면서 내 인생을 살고 싶다. 그게 내 진심이다. 진심으로 대했고 매번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생각하고 복종하며 살았기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여기까지가 내 최선이고 내도리는 끝났다. 내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도 관심에도 없는 분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거두기로 했다. 나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려고 애쓰기로 했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가기 힘든 법이다.

오늘은 진짜 봄날처럼 상쾌하고 가벼운 기운이 감돈다. 카페를 하면서 이런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손에 꼽는다. 장사가 잘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나는 이런 분위기와 좋은 기운을 내 안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그저 오늘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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