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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와 만나기 시작했다. 2편

by 제이

캠프가 끝나고 며칠 후, Jonny와 나는 홍대에서 만났다. 캠프할 때는 항상 활동하기 편한 반발티에 반바지만 입었는데, 그날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까만 시폰 원피스를 입었다. 약간은 도발적인 디자인이었다. 원피스의 상위는 탑 모양인 롱 원피스였다. 훤히 드러나는 목에는 내가 아끼는 목걸이를 하고 나갔다.

Jonny를 만났다. 그는 완전 감탄했다.

“와 대박…………너 완전 눈부셔(YOU”RE SOOOOOOOOOOO STUNNING)”

“고마워…^^”

속으로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하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표현이 나는 좀 적응이 안되고 머쓱했지만, 계속 듣다 보니 내가 뭔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감탄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에게 내가 예뻐 보였던 이유는 나의 파릇파릇한 젊음과 반짝 반짝이는 생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때 22살이었고, 나는 그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는 적어도 나보다… 10살 이상은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부터 우리 사귀자, 우리 1일이야?’ 그런 말은 서로 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눈빛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두 달 뒤에 미국을 가겠지만…. ‘그건 뭐 나중일이니까, 지금은 이 뜨거운 시선을 좀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었고, 그와 나는 파스타를 먹으러 가서 파스타와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그의 인생 얘기를 들었다. 그는 평소에는 초등학교에서 외국인 선생님으로 일하고, 방학에는 캠프에서 선생님으로 일한다고 했다. 음악을 전공했고, 이태원 클럽에서 주말에는 디제잉을 한다고 했다. TV 프로그램에 몇 번 외국사람 역할로 카메오 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카메오 출연을 하면서 기획사랑 연이 닿아서 디제잉과 음악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일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영국을 사랑했으나, 영국에서의 삶이 지루해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그의 인생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서로를 더 신기하게 바라보고, 서로를 살짝 동경했다. 나는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신기했고, 그는 정갈하고 가지런한 내 삶을 동경했다.

Jonny와 내가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뒤돌아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워낙 국제커플도 많고, 외국인과 함께 다니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10년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같이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한국에서 영어 쓰지 말라고 호통을 치셨다. 우리는 옆 칸으로 조용히 옮겼지만,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 Jonny가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떨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좀 뭐랄까… 나를 위아래로 훓어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30대 중반의 영국 남자와 20대 초반의 한국인 여자가 함께 손잡고 걷는 모습은…… 좀 다르게 보이나 보다. 그런 시선들은 애써 외면하며 꿋꿋이 걸었다. 그와 있을 때 그는 이미 나를 구름 위를 걷게 해 줬으니까… 그 정도 시선은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나와 Jonny는 모두 방학이었고, 우리는 하루 걸러 하루를 만났다. 어느 날은 주말 저녁에 같이 이태원에 갔다. 이태원에는 Jonny의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바가 있었다. 그 날 나는 흰색 폴로 티에 연청바지를 입었다. 누구보다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이태원에 가니 모두들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이었다.


“와……………진짜 대박……… 오늘도 여전히 너는 정말 빛나는구나. 오늘 입은 아웃핏이 네가 이때까지 입은 옷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 그냥 남들처럼 꾸미지 않은 너 그대로가 너무 예뻐.”

“그래. 고마워.”


그는 특유의 과장법으로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바에 들어가니, 나에게는 신세계가 열렸다. 다 외국인이었다. 여기가 한국인지, 영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다고 영국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고 터키 사람도 있었고, 미국 사람들, 캐나다 사람들 다양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포켓볼을 치고 앉아서 얘기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함께 어울려 놀았다. Jonny는 나를 여자 친구로 소개했고, 그들은 다들 나를 예뻐했다. 공통적으로 했던 말은 ‘스타일이 전형적인 한국인들이랑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예쁘고 꼼꼼하게 화장도 못하고, 유행에 맞게 옷을 살 능력도 못되어… 그냥 심플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었지만… 뭐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뉘앙스가 칭찬 같았다… 내가 착각한거면 미안;

Jonny와 함께 하는 매일매일은 새로웠고, 즐거웠다. 그는 나를 웃게 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가치를 높이 매겼고, 매일매일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얘기해 줬다. Jonny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내가 곧 떠날 거라는 걸 실감할 때면 우울해지곤 했다. 그럴 때는 아이처럼 투덜거렸다.


“제이야, 너 미국 가서 나는 다 잊어버리는 거 아니야??? 미국 가면… 너 미국인만 좋아하는 거 아니야???? 너 미국 가서 안 오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한국으로 돌아와. 1년인데 뭘 그래.”


그렇게 Jonny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Jonny는 시간이 갈수록 더 불안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출국하는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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