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2020)
데뷔 15년 차에 접어든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삶을 조명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미스 아메리카나>는 데뷔 이후 쌓아온 음악 커리어와 음반 제작 과정,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 최근의 정치적 행보 등을 담고 있다. 이런 류의 다큐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역시 무대 밖 일상과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넘치는 창작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 어필하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며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얻기에 충분하다.
데뷔 이후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큰 위기를 맞는 시점이 오는데 그 유명한 카니예 웨스트의 시상식 무대 난입 사건이다. 힙합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카니예 웨스트가 스위프트의 수상 소감 도중 훼방을 놓는 걸 보고 굉장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사안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좀 놀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 사건을 비롯하여 숱한 추문에 휩싸이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를 반복했고, 훗날 카니예 웨스트, 킴 카다시안 부부와 갈등을 빚으며 뱀에 비유되며 조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그때마다 남다른 멘탈리티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논란마저도 마케팅에 이용할 줄 아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악함에 주목할 수도 있겠다.
영화 전반에서 미국 대중매체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여성 아티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민낯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추행 소송건을 계기로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한 이후 컨트리 가수라면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본인의 소신을 대중에 어필하는 테일러의 모습이 감동을 자아내며 극의 정점을 이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18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성 인권에 반하는 행보를 보여온 테네시 주 공화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나선다. 판세를 뒤집진 못했지만 그녀의 행동이 미국 사회에 일으킨 반향은 컸다. 미국의 컨트리 여성 그룹 ‘딕시 칙스’가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이후 팬들의 거센 반발에 시달렸던 전례로 볼 때 스위프트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은 분명하다.
영화는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 역량을 집중하던 여성 뮤지션이 어떤 계기로 여성과 성소수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는가를 일련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그런 흐름에서 본다면 다음 세대에 전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신곡 <Only the young>이 말미에 흐를 때 영화적 감흥은 배가된다. 지금껏 스위프트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은 없었지만 이 한 곡만큼은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