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재학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공간감'이라는 단어였다. 마찬가지로 감정평가 업계로 들어오고, 필자는 '가격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는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여섯번째 감각, 육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필자의 경험상 본인이 소유한 부동산의 시장가치가 얼마인지 몰라서 감정평가를 맡기는 사람은 드물다. 시장가치란 결국 시장 참여자들이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누군가는 감정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평가의 필요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시장 참여자 개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있다. 시장 참여자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의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장가치의 하한을 요구하는 담보평가가 그러하다. 부동산 이해관계자가 아무리 부동산에 정통해 있다고 해도 담보가치처럼 시장가치의 하한 판단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감정평가사가 필요하다.
앞서, 필자는 감정평가사가 가진 육감, 즉, 가격감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감정평가는 때때로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판단의 영역이라고 전제했다. 이런 맥락에서 조금의 비약을 보태자면, 필자가 생각하는 감정평가사의 가격감이란 바로 이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을 판단하는 전문가적 감각이다.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은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가 성립 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 가치의 범위라는 점에서 매도인이 부르는 매도호가나 매수인이 부르는 매수호가와는 다르다. 단순히 높게 부른다고 시장가치의 상한이 되는 것이 아니며, 낮게 부른다고 시장가치의 하한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 판단은 매도인과 매수인 일방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영역이 아니고, 매도인과 매수인 양 당사자가 모두 이익을 전제하며,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로 그 가격 균형을 맞춰가는 동적 소통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의 판단을 위해서 감정평가사는 기준시점 현재의 인근 부동산 거래 가격,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함을 고려한 부동산의 가치, 해당 부동산 시장의 시장참여자들의 평균적인 세금 신분, 부동산 활동 시 소요되는 각종 경비 및 그 지출의 효율성, 부동산의 수익성과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망, 부동산의 대체 자산으로서의 주식이나 채권 등의 투자 자산에 대한 수익성 판단, 금리,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 거시 경제적 흐름에 대한 파악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고려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인간과 시장의 불합리까지 시나리오에 넣는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현실 경제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발생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의 극한을 지적하는 것이 바로 시장가치의 상한과 하한 판단이며, 감정평가사의 가격감이다.
담보가치를 예를 들어 보자. 담보가치는 매도 입장에서는 부동산의 시장 출품기간을 줄이는 대신 적정한 시장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도하는 금액이며, 매수하는 입장에서는 줄어든 출품기간만큼 부동산에 대한 정보 수집을 포기해 그만큼 미지의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조금 더 싸게 매수할 의향이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감정평가사는 대상물건의 특성과 부동산 시장의 특성에 비추어 출품기간의 가치를 감각적으로 수치화하고, 이를 시장가치에서 공제하여 담보가치를 선언한다.
최근 AVM(자동평가모형)이 대두됨에 따라 감정평가사의 입지가 좁아질거라는 예측이 많다. 물론 AVM은 훌륭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AVM은 논리가 중요한 감정평가 업무의 일부를 대체할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의사의 결정이나 부동산 시장가치의 극한을 지적하는 영역들에 대한 감정평가사의 육감섞인 가격들까지 AVM의 논리가 대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