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와 프롭테크에 관하여
감정평가 실무에서는 통상 가치(value)와 가격(price)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보면 두 개념은 분명히 다르다.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면, 가치, 정확히 말해 경제적 가치는 어떤 재화가 장래에 창출할 효용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 값의 합을 의미한다. 반면 가격은 시장에서 실제로 지불된 금액, 즉 거래의 결과로 관측되는 수치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생 A가 치킨이 너무 먹고 싶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A는 치킨 한 마리를 사기에는 현금이 500원 부족하다. 그는 집 안을 뒤지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굴러다니던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치킨을 사 먹는다. A의 아버지는 동전 수집가였지만, 수집품에 대한 관리는 소홀했나보다. 그래서 A는 알지 못했다. 그 500원짜리 동전이 사실은 10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희귀 동전이었다는 사실을.
1998년은 IMF 외환위기 직후로, 500원짜리 동전의 발행량이 극히 적었던 해다. 그 결과 1998년산 500원은 현재 수집 시장에서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해당 동전은 시장에서 500원이라는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거래 당사자인 A가 대상물건에 대해 정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 일화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가치는 합리적 추정을 통해 도출되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인 반면, 가격은 특정 시점과 거래 조건에서 관측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가격은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거래 당사자의 정보 수준이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모순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제 경제학의 가치이론과 감정평가 실무에서의 가치 개념을 살펴보자.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가치는 대체로 어빙 피셔의 가치 정의에 기초한다. 즉, “대상물건에 기대되는 장래 효용의 현재가치 합”이다. 감정평가 실무에서도 이 개념은 시장가치라는 용어로 구현된다. 시장가치란, “대상물건이 통상적인 시장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공개된 후, 그 내용에 정통한 당사자 간에 신중하고 자발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액”을 의미한다.
그러나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 기술의 발달은 가치 개념 자체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프롭테크 기업들은 가치를 장래 기대 효용의 현가합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다수의 가격 데이터를 분석해 도출되는 ‘가격이 수렴하는 지점’을 가치로 해석한다.
많은 감정평가사들은 “가격은 장기적으로 가치에 수렴한다”는 명제에 직관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실무에서 그 수렴 지점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감정평가 실무에서는 여전히 어빙 피셔의 가치 이론을 기본 틀로 삼되,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을 평가사의 전문적 판단으로 보정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어빙 피셔의 가치 정의를 실무적으로 구현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장래 기대 효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둘째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현재가치화할 것인가다. 지금까지 감정평가사들은 주로 시장의 추세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장래 기대 효용을 추정해 왔다. 미래 시장의 상황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평가사의 경험과 통계적 기법으로 보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산정된 장래 효용을 불확실성을 반영한 할인율로 현재가치화하여 그 합으로 가치를 평가한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동해 왔고, 당분간 그 유효성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나 추세 연장을 통해 장래 기대 효용을 산정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시장 변화가 거시적인 추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불확실성 하의 오류를 과연 평가사의 전문성만으로 충분히 보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에 의한 가치 추정은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그 이론적 뿌리는 감정평가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감정평가 기법과 빅데이터 기반 가치 추정 모두 과거의 가격 데이터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빅데이터 분석은 인간의 직관이나 경험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수학적 인과관계를 도출할 수 있고, 불확실성을 확률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차별성을 가진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도 분명하다. 현재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부동산은 거래 빈도가 낮고 개별성이 매우 강한 자산이다. 게다가 가격 결정 요인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실거래가 데이터는 엄밀한 의미의 빅데이터 분석을 적용하기에 충분한 양과 밀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도입 중인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제는 상황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임대차 신고제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는 거래 빈도가 높고 연속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데이터로써의 가치가 높다. 더 나아가 임대차 시장은 그동안 데이터 부족으로 프롭테크가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수익’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물론 임대차 시장은 가구별 금융 조건, 정책 대출, 제도적 제약의 영향이 커 수익성을 일률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빅데이터 기반 가치 추정의 신뢰성과 정확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감정평가사에 의한 가치 평가와 빅데이터 분석에 의한 가치 추정. 앞으로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의 경쟁과 공존 자체가 가치라는 개념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구경거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