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시 시작하는 시작기
여행 가기 전, 친구들이 나에게 선크림, 마카롱 등 이것저것을 선물해주고 카카오톡으로 잘 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인천공항 가는 길에서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고 무지개를 보기도 했다. 긍정적인 많은 것을 보았고 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그것들이 담겨서인지 내 가방은 왜인지 모를 내 마음처럼 무겁더라.
드디어 출발.
세계여행을 갈까 하고 생각하던 나날들.
‘여행을 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자 휴학을 했다.
버튼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쳇바퀴가 멈춰졌다. 쳇바퀴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상상하는 것은 떨리면서도 기쁜 것이었다. 앞으로 온전히 가질 나만의 시간이 기대되었다. 이 시간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여행과 그에 대한 준비로 꽉꽉 채워지길 원했다. 그때에 나는 조금 간절했다.
처음에 이 결심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결심은 섰지만 세계여행이라는 것은 홀로 제주도 한번 안 가본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큰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살던 곳에서 편하게 한 달을 더 있기로 했다. 옆집 아저씨의 화장실 소리, 코 고는 소리까지 모두 공유하는 귀엽기 짝이 없는 크기의 고시원이었다. 그렇게 인생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잡은) 철저히 혼자인 한 달이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카페에 가서 생각을 했다.
“나는 어디를 가야 하나.”
“나는 어떻게 되려나.”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해야 할까.”
“엄마 아빠는 어떻게 설득시킬까”
그냥 느릿느릿 생각만 하고 계획만 짠 한 달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많은 계획들이 잡히고 내 이름의 가이드북까지 생각할 무렵, 드디어 머릿속에만 있던 여행을 부모님께 말하는 시간이 왔다.
내가 휴학을 한다고 하자 “그럼 등록금은 네가 벌어!” 하시며 반대하시던 엄마였다. 엄마 딴에는 나름 강력한 한수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대학 학비를 부모님 손을 벌리고 있었으니 강력한 한수가 맞긴 했다. 대체 휴학이 뭐라고 엄마는 휴학이 내가 뜬금없이 자퇴 선언을 한 것 마냥 반대를 하셨다.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았고, 말하다 보니 억울해서 눈물까지 나왔다.
“등록금 내가 벌어서 낼게! 왜 안된다는 거야? 여행도 내 돈으로 가는데!”
엄마는 그 답변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던지 나의 등록금 벌어서 내겠다는 선언 해도 불구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마트에 가던 차 안에서 우리의 싸움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엄마는 외쳤다.
“여기서 내려!”
그렇게 휴학 하나에 반대하던 엄마인데 말하는 날이 떨렸던 건 당연했다. 엄마가 말려도 가지 않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의 의견은 소중한 법이었다. 그렇게 엄마가 말할 것들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말했던 날, 내 생각보다 싱겁게도 엄마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큰 마음의 짐은 그렇게 가벼워졌다.
그리고 또다시 아빠에게 두근두근 거리면서
“아빠, 나 세계여행 가려고.” 툭 던졌을 때에는
“그래? 가~”힐끔 쳐다보면서 말하는 아버지의 무심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상 둘의 허락으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 언니에게도 점진적으로 나의 계획을 전파했다. 친구들이 출국 준비로 분주한 나에게 선크림을 주거나, 마카롱을 주거나, 우리 동네에 와서 내 얼굴을 보고 갔다. 카카오톡으로도 잘 다녀오라는 말이 쓰였다. 덩달아 잘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약간 무거워졌다.
드디어 출국 전날.
고향인 광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인천을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먹었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식사가 아닐 텐데 마지막 식사 같은 식사였다. 왜인지 모르는 애틋한 분위기가 맴돌았는데 가족 사이에 그 오묘한 분위기는 신기했다. 부모님은 내가 앞으로 잘 못 먹고 다닐 거라고 확신하는 듯 자꾸 음식을 권하셨고, 나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더욱 많은 음식을 먹었다.
먹던 모습을 보던 엄마는 ‘인도의 성폭행에 대하여, 남미의 위험성에 대하여, 소매치기에 대하여, 내가 얼마나 칠칠맞은지에 대하여’ 다시 늘여놓으셨다. 엄마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걱정들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때껏 나에게 틈틈이 전달하고, 엄마가 모은 불안한 세계의 뉴스들로 걱정은 체계를 갖추었다. 아빠는 출발하는 애에게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엄마에게 대꾸하셨다. 나를 걱정하는 엄마와, 응원하는 아빠의 싸움이 밥 먹는 동안 치열해졌다.
그렇게 둘의 걱정과 응원의 마음으로 하루는 금방 가고, 인천공항에 가는 날이 찾아왔다.
차에서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배낭을 손에 쥐면서 이 기분을 즐겼다. 멍하니 창문을 보다가 올해의 첫눈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보이는 무지개도 구경했다. 왠지 모르게 세상의 만물이 내가 여행 가는 첫날을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배낭을 잡고 있던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내 여행을 멋질 것만 같아!’
엄마 아빠를 한 번씩 안고,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비행기를 타려고 들어갔다. 엄마가 울 줄 알았는데 왜인지 모르게 내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귓가에서는 우연히 들리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들렸고, 나는 나에게 응원을 주었던 친구들과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묵직해졌다.
‘나, 잘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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