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은 운명의 매물 !
부평에서 쓰나 쓴 고배를 마시고 아무런 기대 없이 우리는 성수로 향했다.
인천에 머물고 있던 우리에게 성수 상권에 대한 인식은 매일 팝업이 열리는 팝업의 성지이자, 권리금이 무지막지할 것 같다는 인식 말고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올초 만났던 붕어유랑단 대표님이 설명해 주신 성수 상권의 특이성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을 뿐, 그 미세한 기억의 조각을 붙들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성수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붕어유랑단 최대표님이 설명해 줬던 성수는 '성수 구길'이었다. 그곳은 시골처럼 상인들끼리 서로 챙겨주고 따듯한 상권라는 한마디에 의지해 구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첫 느낌이 가장 중요해 !
구길에 처음 방문하고 느낀 점은 온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구길 근처를 임장 하다 우연히 한강과 이어진 길까지 가게 되었는데, 뻥 뚫린 한강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있었다.
와 여기다. 여기서는 무조건 뭘 해도 잘 되겠다.
구길은 부평에서 매물을 찾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 따듯함이 한가득 담겨있는 동네였다.
같은 시기에 올초 모임에서 만났던 니엘라, 당후곰님도 성수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장사를 하는 것보다. 적어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따듯한 기운이 있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뭐든 잘 될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메인 스트릿인 연무장길도 가봤다. 연무장길은 한 달 임대료만 평당 몇천을 부르는,, 충격과 공포의 상권이었다.
핫한 연무장길을 보며, 14~17년도 핫했던 홍대 상권이 떠올랐다. 연무장이 핫하면 핫할수록 실증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예전 홍대 상권에 질려 연남동까지 골목골목 찾아가던 소비자의 심리가 여기서도 작용하지 않을까?
지금은 연무장길이 홍대 메인스트릿이라고 생각하면, '구길'은 연남동처럼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상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운명처럼 만난 가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구길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닫혀있는 가게가 하나 보였다. 가게 이름을 인스타에 검색해 보니 '해피캔디쿠키'라는 쿠키집이었다. 인스타를 보니 올해 초부터 운영을 중단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와있었다.
왠지 이 가게가 내 가게가 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가게에 임대라고 붙어있지도 않았는데도, 뭔가 인스타에 적혀있는 문구나, 가게에서 풍기는 느낌이
" 나 좀 데려가주세요"
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가게 근처를 둘러보니 바로 근처에 부동산이 보였다. 바로 부동산에 달려가서 쿠키집 혹시 매물이 나왔냐고 물어보았다.
부동산에서는 어떻게 알았냐며 , 매물나온지 좀 됐다고 안에 구경해 보실 생각 있으시냐 반문하셨다.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지만, 기존에 매물 탐색을 하기 위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다. 아무리 성수 뒷길이어도 성수는 성수 아닌가... 부평에서 데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부동산에서 가게를 보여주면서 말씀해 주신 조건은 보증금 2천만 원 미만에 월세 100만 원 미만이었다. 우리가 정해둔 기준에 충족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리금이었다. 쿠키집 사장님이 부른 권리금은 n 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의 말에 의하면 본 매물은 올해 초부터 나와있었고, 6월인 지금의 시점까지도 매물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권리금은 충분히 쿠키집 사장님과 협의를 하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을 한 끝에 나는 쿠키집 사장님께 용기 내서 디엠을 보냈다.
다행히도 쿠키집 사장님은 나의 만남 요청에 ok를 해주시며 만나주셨다.
잘될 때는 늘 좋은 사람을 만난다.
쿠키집 사장님은 본인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모두 과감하게 공개해주셨다. 힘들었던 점 좋았던 점 솔직하게 유동인구가 생각보다는 없다는 점까지도 다 얘기해주셨다.
쿠키집 사장님과 첫 만남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느낀 점은 사람.. 참 좋다..라는 것이었다.
인품도 말도 못 하게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수년간 가꾼 가게에는 좋은 기운이 깃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리금 문제만 조율을 하면 바로 진행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가게와 쿠키집 사장님의 마인드에 매료되었다. 나는 바로 권리금 문제에 대해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올초부터 가게가 안 나갔는데 권리금을 조금 인하해 주실 생각이 없냐고 솔직하게 물어봤다.
사장님 입장에서도 가게 운영도 하지 않는데 월세를 계속 내는 것보다는 우리가 빠르게 인수해 주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얘기해 볼 용의가 있었다.
쿠키집 사장님과 긴 대화 끝에 권리금 인하와 더불어 두 달 치 월세 렌트 프리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올초 파티룸 양도 양수 할 때 얻은 경험을 살려 최대한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이다. 이래서 작은 경험이더라도 짧고 굵게 해 보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타코보이는 이 시점부터 직장 생활이 바빠지면서 함께 동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지표가 가게를 인수하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 미묘한 지표들을 파워 T 인 타코보이에게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권리금도 인하하고, 가스 배관 설치비도 깎았는데 왜 안돼?
타코보이는 본인이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는 내 의견에 바로 동조해주지 않았다. 더불어 가게를 인수하기 껄끄러운 부분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1. 가스 배관이 연결이 안 되어있다. 주변에 끌어올 가스 배관이 없으면 직접 설치해야 하는데 비용이 300~500만 원이나 든다.
2. 권리금이 비싸다. ( 이는 이미 쿠키집 사장님과 만나서 조율을 했다)
그가 말한 문제점은 이 두 가지였다.
그에게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이 가장 큰 골칫덩이라고 생각했을진 몰라도, 한번 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에게는 정말 별 문제가 아니었다.
타코보이가 문제점을 짚어준 이후 나는 매일 같이 성수 구 길에 찾아가 문제를 닥치는 대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가스 배관 업체에 전화하여 알아보니 쿠키집(지금의 타코낫타코) 왼쪽에 있는 순대국밥집이 가스배관을 끌어와 놓은 게 있어서 그분들에게 허락만 받으면 가스 배관을 연장해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큰 문제점은 보통은 먼저 큰 비용을 들여서 (300~500만 원) 가스 배관을 끌어온 경우에는 배관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후발 주자 가게에게 설치비 절반을 부르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는 점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순대국밥집 사장님과 라포를 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나는 매일 같이 성수에 들러 순대국밥집에 가서 옆에 가게 인수하려고 하는 사장이라고 인사를 드리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라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순대국밥 사장님께 가게 인수를 하고 싶은데, 사실 배관을 연장해야 된다며 이게 해결돼야 가게를 인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순대국밥 집 사장님은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무거운 입을 여셨다.
아유.. 나도 마음 같아서는 돈을 안 받고 싶은데,
가스 업체에서 돈을 받는 게 맞다네..
30만 원은 받아야겠어 암만 그래도,,,
속으로 적어도 100만 원까지는 낼 용의가 있었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 매일 인천에서 성수를 오가며 순대국밥 사장님과 라포를 형성한 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고생한 만큼 돌아오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배관문제도 며칠에 걸쳐 해결했다. 이제 계약만 하면 된다. 근데 여전히 타코보이는 심사숙고하고 싶다는 얘기만 했다. 가게에 계속 방문해서 이런저런 고생을 한 지 2주가 넘어가는데 그는 인천에 처박혀서는 더 고민해 보라는 말 밖에 안 했다.
몸으로 열심히 뛰며 뭐든 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나에게는 그의 신중함이 정말 정말 치가 떨리도록 밉고 싫었다.
주변에서는 타코보이 같이 사업도 안 해본 사람의 의견을 듣지 말라는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렸다.
밉지만 그래도 내 사람이니까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게 우리가 8년간 만나면서 늘 해왔던 방식이니까. 그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지 바보는 아니라 생각했다.
배관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타코보이에게 전화해서 이제 모든 문제가 정리되었으니 계약을 해도 되지 않냐는 의사를 밝혔다.
권리금 인하는 알겠고, 배관도 잘 처리했어.
근데 거기 유동인구는 좀 괜찮아?
그가 문제 삼은 모든 걸 해결하고 나니 이제 다른걸 트집 잡기 시작했다. 사실 트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말대로 유동인구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 유동인구 체크하면 그만이지. 나는 가게 앞에 털썩 주저앉아 3시간 동안 유동인구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3분에 한 명 정도는 지나다니는 모습이었다. 3시간 정도 확인한 후 타코보이에게 3시간 확인했는데 3분에 한 명 이상은 계속 지나간다고 말을 해주었다.
유동인구를 체크했음에도 타코보이는 더 고민해 보자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느낌이 왔을 때 바로 질러야 하는 나와는 다른 타코보이의 신중함이 참 미웠다.
부동산에서도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부동산에는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놨는데, 타코보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매물을 본 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부동산에서는 계약금이라도 보내달라는 독촉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참 답답했다. 타코보이를 붙잡고 이제 네가 문제 삼는 부분들이 모두 해결되었고, 너가 안 하면 나라도 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그 시점의 나는 동태눈깔이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타코야끼 사업을 누구보다 하고 싶은 생태걸이되어있었다. 이 모든 게 좋은 기운을 느낀 덕분이다.
나의 강력한 의사표현에 타코보이는 결국 백기를 들었고, 드디어 그의 컨펌이 떨어졌다. ( 여러분 동업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의 신중함과 나의 빠른 행동력이 조화를 이루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드디어 계약금을 넣다.
6월이었음에도 날이 덥고 햇빛이 강했기 때문에 2주 내내 성수일대를 싸돌아다닌 나의 피부는 안 그래도 까만데 더 까맣게 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어디 동남아 다녀왔냐는 질문을 할 정도로 피부가 더 쌔까매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철옹성 같던 타코보이의 신중함을 박살 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었더랬다.
그렇게 나는 기어코 상가 가계약금을 넣을 수 있었다. 정말 피눈물이 나는 2주의 시간이었다.
이제 계약도 했겠다. 인테리어를 할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