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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오늘 May 13. 2022

속상했어? 그런 마음이었구나

아이와의 대화

 그 말은 참 따뜻했다. 마음이 담겨 있어서,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아서, 존중받는 것 같아서.




벚꽃과 개나리가 피었을 무렵, 봄이 성큼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온 오후였다.


“고구마 주세요” 아이가 말했다.  

“약돌아, 고구마 먹고 싶어? 근데 지금은 찐 고구마가 없어, 전자레인지 돌려서 고구마 쪄줄게. 조금만 기다려”.


아이는 배가 무척 고팠는지 칭얼거리다가 거세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은 쉽게 그쳐 지지 않았다. 아이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도 격해졌다. 짜증이 났고, 예민해졌다.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목청을 높이려고 했다. 울음을 듣고 있으니 계속 불편했다. 한편으로 이해되는 것은 자기주장과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서 유독 떼를 쓰는 빈도가 잦음을 알고 있었다. 분명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혹시나 아이가 떼를 쓸 경우, 대처 방법에 대해 <금쪽같은 내 새끼>를 통해서 미리 배워두었다.


“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5단계’ 대처법을 사용했다.

① 반응하지 말기

②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게” 딱 한마디만!

③ 절대 자리를 떠나지 말기

④ 시간이 걸려도 포기하지 말기

⑤ 울음이 그치면 대화를 시작하기 (감정 알아주기/잘못된 행동 말하고 대안 제시하기)


“약돌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게”라고 말한 뒤 나는 묵묵히 아이 옆에 있어주었다. 세상 모든 슬픔을 아이가 다 가진 듯 50분 동안 쉬지 않고 울었다.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울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 길고 힘들었던 시간은 끝내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소화가 되었는지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꺼낸 첫 한마디.


“속상했어? 약돌이가 고구마를 당장 먹고 싶은데 기다려야 해서 싫었구나”.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내가 꺼낸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의 어린 시절, 내면의 아이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정말 고마웠다. 나를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아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내가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나의 어린 시절 덕분이었다. 아버지로(친할머니)부터 받은 체벌, 정서/언어적 학대와 감정 억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불행한 어린 시절은 행복함보다 불안함이 더 컸고, 부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졌다. 감정 표현을 할 줄 몰라서 쉽게 욱하며,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방어적이게 되었다. 충분한 공감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 내 감정만 소중했지 남의 입장을 공감할 줄 몰랐다. 낮은 자존감도 함께.  


그 어두웠던 시절의 그림자를 아이에게 더 이상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나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게 했고 육아에 대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으며,  무엇보다도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아이의 감정에는 너그럽지만 행동에는 엄격하게, 아이를 배려하면서 부모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 인격을 비난하지 않는 것. <부모와 아이 사이, 하임 G. 기너트, 양철북>                                                            

                                                                                         

그대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한 따뜻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내면의 아이와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를 키워가겠지?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말해 주어서 감사하다.  


마음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주인뿐이에요. 마음의 해결이란 불편한 감정이 소화되어 정서의 안정을 되찾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려는 마음의 해결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략)     
 결국 내 마음이 편하고 싶은 거예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은 정서적인 억압입니다. 상대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그냥 좀 두세요. ‘아, 아이가 지금 기분이 좀 나쁘구나. 기다려줘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오영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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