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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오늘 May 24. 2022

작은 종이에 마음을 띄운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신 축하합니다”.


엄마의 예순 번째 생신 날이었다. 엄마가 생신 케이크에 있던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르는 동안 아빠가 깜짝 이벤트로 엄마에게  편지를 읽어주셨다.   


60년 전, 김포 어느 동네에서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그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늘 부모님을 위하면서 소 돌보고 죽 끓이고 풀 매는 등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소녀 농부였지요. (중략)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이제 60년 인생을 걸어온 발자취인 환갑을 맞이하게 됩니다.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 남편은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으니 건강을 챙기고 남편과 함께 오래 살아주기를 온 우주만큼 소망합니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하고 건강하길 바라며 환갑을 축한 한다는 진심을 담아 이 글을 띄웁니다. 남편 드림


정성을 다해 쓴 문장을 천천히 읽어주실 때, 나의 마음은 뭉클해졌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다. 엄마의 60년 인생이 작은 종이에 보석 같이 가득 담겨있었다. 엄마와 40년을 함께 해오신 아빠의 마음이 편지에 온전히 담겨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고 멋있었다.





편지가 가진 가치는 무엇일까?


단 몇 초, 몇 분이라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쓰는 글은 그 사람을 향해있다. 진심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닿아있다. 마음이 하는 일이라서 참으로 깊고 크다. 짧게 말하자면, 사랑이다.


오래 전의 나는 편지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고 표현하지 않았다. 특히 가족에게.


결혼하고 난 뒤에 깨달았다. 결혼 후 맞는 나의 생일에 시부모님, 남편, 남편의 여동생이 편지를 써서 나에게 전해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친정부모님에게 생일 편지를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두 손 가득 받은 편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편지에 담긴 글은 하나같이 희망적이고 밝고 환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편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친정/시댁 부모님과 누군가의 생일이 찾아오면 편지를 쓰고 내 생일마다 편지를 받는다. 일상에서 머쓱해서 하지 못했던 말들(존경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을 글로 표현한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때로는 편지를 쓰는 내 모습이 멋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모아둔 편지는 어느새 20장이 넘는다. 서랍 함에 넣어 둔 편지가 쌓일 때마다 밥을 먹은 듯 포만감이 느껴진다. 편지에 새겨진 마음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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