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센, 그리고 야끼니꾸...
일본인 3, 미국인 1, 호주인 1. 미국인과 호주인은 친구였다. 일본인 셋 역시 시코상과 시코상이 데려온 본인 친구, 할리 라이더들이었다. 나만... 혼자였다. 여행은 혼자 다니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고, 지금까지 수월한 홀로 여행을 즐겨왔는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낙심하고 말았다. 역시 인생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음에 있는 것인가. 이대로 고독사 할 수 없었다. 일본어는 표현 몇 개(ex やめて! : 그만해 , きもち : 마음(가짐); 기분; 감정)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지금 상황에서 쓸모가 없었다. 영어를 공략해야 했다. 되지도 않는 영어, 파파고의 힘을 빌어 그들과 대화를 해나갔다. 호주인은 마이클, 미국인은 트리스탄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그 뒤의 말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냥 스페인계냐고 물었을 뿐. 부모님이 스페인계였다.
마이클은 그냥 호주인. 둘은 모두 23세였다. 한참 동생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내 나이를 듣고 피부관리를 너무 잘했다며, 동안이라며 놀라워했다. 측은함에 극호감이 더해졌다. 인간이 됐다. 시코상은 다 같이 저녁을 사러 가자고 했다. 다 같이는 아니고, 본인 일본인 친구 둘은 집을 지키고 나, 시코상, 노안이지만 마음씨 고운 마이클, 단신이지만 볼수록 호감 가는 트리스탄과 함께 마트로 향했다. 참고로 마트는 9시가량이 되면 대폭 할인에 들어간다. 9시가 되진 않았지만 이미 할인이 시작했을 거란 시코상의 말에 부푼 기대를 안고 마트로 향했다.
초밥은 이미 전멸했다. 플랜 B로 회 코너를 향했다. 다행히 회는 남아있었다. 회를 고른 후 각종 튀김과 구이용 생선, 그리고 시코상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 오니기리 등... 이것저것 먹거리를 담고 맥주를 골라야 했다. 기린이 보였다. 이치방이 아니었다. 기린은 기린인데 처음 보는 기린. 시코상 말로는 세칸도 맥주라고 했다. 이치방은 파스또 비루. 그래서 이치방(いちばん : 일번; 첫째; 일등)이었구나...
이치방보다 저렴한 기린 몇 개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할리 라이더들이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할리를 모는 사람들은 집안일의 '집'자도 모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요리 같은 건 나 같은 125cc 이하의 라이더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식사가 다 준비됐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너무 오래 돌아다녀 허기가 진 터라 닥치고 먹었다. 목도 말랐기에 맥주도 왕창 마셨다. 트리스탄과 일본 사람들은 일본 말고 나와 마이클은 (나의 허접한) 영어로,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피곤하고 술도 마신 터라 기억이 별로 없다.
책이 읽고 싶어 졌다. 휴가 가서 여유 있게 책을 읽는 궁상을 꼭 한번 떨어보고 싶었다. 책을 핀지 5분 만에 졸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시코상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이볼을 주면서 급격하게 잠이 왔다. 시코상이 준 하이볼은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과 다르게 위스키의 비중이 높아서인지 너무 졸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이 곳을 떠나야 했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던 나로선 이 곳의 마지막을 여유 있게 둘러보다 떠나고 싶었다. 먼저 근처에 온천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야끼니꾸 집 또한 추천받았다. 어차피 발만 떼면 땀이 줄줄 흐르니 온천에 가서 씻고, 그동안 하도 걸어서 무거워진 다리의 피로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온천을 향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물어물어 온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파고가 아니었다면 온천도 못 찾고 지금도 후쿠오카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도착한 온천에서 씻고 쉬고 나오니 한결 나았다.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격마저 저렴해 피로가 더 풀리는 듯했다.(400엔) 심지어 덜 더웠다. 그렇게 다시 힘을 얻어 발걸음을 옮겼다. 야끼니꾸를 먹기 위해.
야끼니꾸 집은 시코상이 추천해준 근방에 있는 곳이었다. 비 싼 곳은 거품이라며 근처에 있는 곳을 추천해줬다. 맛도 괜찮단다. 시코상이 추천해줬다고 말하라길래, 말하면 어떻게 되냐니 그건 모른단다. 무책임했다. 그렇게 도착한 야끼니꾸 집. 그냥 우리나라 평범한 음식점 같았다. 좋았던 건 한국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이란 것. 그냥 근처 직장인, 마트 직원, 학생들이 와서 밥 먹고 가는 곳이었다. 시코상의 추천을 받아 왔다고 하니 점원분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렇게 메뉴를 추천받고(800엔) 식사를 기다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 드라마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영상의 느낌이나 연기의 톤이 우리나라 아침드라마와 비슷해 보였다. 역시 아줌마들의 시간대에는 저런게 먹히는 건가. 다행히 얼마 있지 않아 고시엔(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으로 채널이 돌아갔다. 고시엔인데 우리나라 프로야구 뺨칠 정도로 관중이 많았다. 심지어 야수들의 수비는 어느 팀의 어떤 선수들보다 나아 보였다. 얼마 후, 메뉴가 나왔다.
우리 돈으로 약 8,000원 정도니 나쁘지 않았다. 돼지도 아니고 소인데... 감사하며 먹었다. 맛도 괜찮았다. 나중에 온다면 고기가 많은 메뉴로 시켜야겠다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진짜 후쿠오카의 메인 투어를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