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앞에 10을 붙이면 더욱 적절해진다
우리 부모님은 불교신자다. 사실 신자라 하기 민망한 게 딱히 절에 나가지 않으신다. 어머니도 내가 초등학교 때 이후로 가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애초에 주말에 늦잠을 주무시는 분이라 패스. 반면 나는 기독교 신자다. 처음에는 재수를 하는 입장에 이성과 자연스레 만나고 예배 후 교제의 시간도 가질 수 있기에 놀러 다니는 마음으로 다녔다. 전날 술 먹고, 클럽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해도 나갔다.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이후 신앙이 생겼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시된 어엿한 크리스천이 됐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항상 의심 많고, 염세주의자인 내가 (비교적) 신실한 신앙인이 되다니.
9일(주일)도 여느 때처럼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었다. 우리 교회는 필로티 형태로 된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때였다. 차량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데 족히 40km는 될법한 속도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실내 주차장에서 밟을 속도는 아니었다. 그것도 모자라 주차를 하기 위해 후진을 하는데 이때 역시 무식하게 밟아댔다. 뒤로 지나가던 청년들을 칠 뻔했다. 운전자가 누군지 쌍판 식별이 필수였다. 딱 봐도 교역자 차림의 남자가 내렸다. 계속 쳐다봤다. 나 이외에도 옆에 다른 사람들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본인도 눈싸움을 피하지 않다가 머쓱했는지 쪽수에 밀렸는지 슬쩍 고개 인사를 했다.
이후 옆에 있던 형의 말로는 오후에 있는 저녁 예배에 늦어서 그런 것 같다며 우리가 이해하자고 했다. 누구 한 명 쳤어도 이해했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쩌겠나. 교회인걸. 밖이었으면 육두문자가 오갈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최소 순찰차 한대는 떠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교회기 때문에 나도 참았다. 우리나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유교의 정신이 섞여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이외에 자기들의 전통에 더욱 얽매이는 유대인들을 보는 것 같다. 내가 그 전도사를 이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고를 내는 모든 사람들은 다 사정이 있다. 산지직송 장어가 죽는다고 고속도로 갓길로 주행하는 아저씨도 있지 않았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내가 핑계를 다 이해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나는 그리 다혈질이 아니다. 어릴 때야 누구나 호승심에 달려들고, 조금의 자극에도 참지 못하지만 나이 먹고 난 뒤엔 특별히 화도 잘 내지 않고, 화가 날만한 상황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잘 식지 않는다.
고려는 말기에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사실 강도로 따지자면 조선보다 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조선을 시궁창으로 만든 게 바로 중국에서도 버린 유교다. 우린 그 유교를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선의 발전을 저해하고, 말도 안 되게 적은 비율의 양반들만이 나라를 다스리고, 가장 늦게까지 동족을 노비로 부린, 미개한 나라의 표본인 조선의 선비의 때. 그 땟국물을 이젠 씻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