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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Feb 11. 2019

인도의 숨겨진 여행지(1) 레, 라다크

많은 사람들은 라다크를 ‘사막의 오아시스’라 이야기한다. 라다크는 1년 중 세 계절을 황량하고 차가운 겨울 속에서 보내고, 여름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빛을 발하는 신비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겨울 속에서 버티며 습득해왔던 라다크인들 특유의 따듯한 마음과 이웃을 끌어안는 온정은, 일상의 피로에 등 떠밀리듯 살아왔던 외부인들을 다독이고 끌어안으며 ‘잠시만 뒤를 돌아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지친 현대인, 지친 여행자들에게 따듯한 차와 마음의 여유를 선사하는 신비한 땅, 라다크는 분명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일 것이다.


 라다크는 인도 북쪽 끝 잠무-카슈미르에 속하는 마을이다.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라다크는 평균 40~45도를 웃도는 인도의 살인적인 더위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며, 연중 서늘한 기온을 자랑한다. 때문에 해마다 여름이 되면 인도를 옥죄어오는 열대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라다크로 향한다.


하지만 라다크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1년 열두 달 중, 라다크에 방문할 수 있는 날은 평균 3개월, 길어야 4개월뿐이다.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이 최고조에 이를 때 라다크는 겨우내 닫아두었던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또다시 1년을 꼬박 기다려야만 한다. 일단 문이 열렸다고 해서, 누구나 손쉽게 라다크를 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도인 뉴델리에서 버스로 꼬박 이틀을 소모해서 달려야만 비로소 라다크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델리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손쉽게 비행기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비행기는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역으로 단숨에 이동하기 때문에 극심한 고산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고산병을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델리에서 델리 북부지역인 마날리, 마날리에서 마날리-라다크 고속도로를 타고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로 향하는 것을 선호한다. 작은 버스에 올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인 해발 5,325m의 따그랑 라(Taglang-La)를 넘어 라다크로 향하는 설산과 초원들을 마주하다 보면, 라다크를 위해 기다렸던 인고의 시간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가버리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온전한 ‘자연의 땅’ 라다크로 향하는 길은 무한히 아름답기만 하다.


라다크로 가는 길. 새벽 5시-6시 사이, 동이 트고 있다.

 

이 정도 사고는 흔한 편이다. 도랑에 미니버스가 빠져 안간힘을 내고 있는 중.

 라다크는 불과 40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외부에 공개되었다. 라다크에 정착해 살아왔던 ‘라다키’들의 선조는 티베트인들로, 엄밀히 말해 라다크는 인도의 땅이라기보다 티베트 유목민들의 땅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라다키들은 1년 내내 겨울이나 다름없는 척박한 라다크 땅에 둥지를 틀고 살며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을 지키며 그 전통을 이어왔다. 라다크는 북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파키스탄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등 인도의 군사적 요충지나 다름없어 늘 민감한 영토였지만, 좀처럼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단점을 통해 자국인 인도 및 중국, 파키스탄 등 외부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라다크가 외부와의 교류를 시작한 이후 서부식 교육과 서구의 문물들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면서 오랜 기간 동안 고수했던 전통적 생활방식을 생존과 생계를 위해 버려야 했던 라다키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선조였던 유목민들에서부터 내려왔던 종교적인 믿음과 공동체적 생활습관은, 최근 급속도로 변하는 라다크의 뿌리를 여전히 굳건하고도 튼튼하게 잡아주고 있다.


라다크 근방의 고개 위에서
레 전경


 해마다 여름이 되면 초원은 기다렸다는 듯 초록 빛깔을 자랑하며 키를 키우고, 창가를 사정없이 두드리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라다키들이 겨우내 만들어 두었던 공예품과 토산품들은 비로소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 도심의 시장으로 내려온다. 라다크의 모든 사람들은 이 짧디 짧은 여름 한 철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라다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밖에 없는 풍경과 생활방식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에 쫓겨 도망치듯 라다크를 방문한 직장인 여행자들조차 이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다른 지역보다 대기가 차갑고 건조한 탓에 조금이라도 바삐 움직일라치면 어김없이 차가운 얼음물을 급하게 들이켠 것처럼 머리가 아파오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라다크의 맑고 투명한 기류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진귀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음미하듯, 두 발을 이용해 천천히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 누구도 빨리 가려하지 않고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길거리에 잠시 앉아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출레’하고 두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네는 라다키들이 다가온다. 산사람들 특유의 까맣고 주름진 얼굴 가득히 퍼진 온화한 그들의 미소 뒤로 조용히 울려 퍼지는 곰파(사원)의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라다크를 지켜낸 라다키들의 소박하고 값진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라다크는 한 걸음 한 걸음 그저 걷는 것 자체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 풍족한 마을이다.

따듯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던 라다키 가족들의 모습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판공초’(Pangon-cho)


 2011년 한국에서 개봉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도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는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게 빛나는 호수가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 란초, 그리고 란초를 통해 인생의 경험을 하게 된 친구들과 란초의 연인이 재회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세상에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파란 호수의 기운을 받아 더욱 밝게 빛난다. 비현실적인 이 호수의 이름은 ‘판공초’로,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판공초로 가기 위해서는 지프를 타고 다섯 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데, 레를 벗어나 판공초로 가는 길은 델리에서 라다크로 올라오는 초입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라다크의 파랗고 깨끗한 하늘을 가득 담은 판공초의 빼어난 풍경만으로 충분히 넋을 잃을 만 하지만, 이곳에서 하루 숙박하는 사람에 한해 맛볼 수 있는 판공초 유목민들의 생활방식과 푸짐한 전통음식 또한 구미를 자극할 만하다. 거친 산자락에 숨어있는 광활한 호수이니만큼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라다크 그 어느 곳보다 극심하기 때문에 두터운 옷을 꼭 챙겨가도록 하자.  

<세 얼간이>의 마지막 씬, 바로 이 장면의 주인공인 판공초


레 왕궁과 남걀 체모 곰파(티베트식 불교 건축물)


레 왕궁은 1553년(16세기)에 라다크의 남걀 왕에 의해 지어졌다. 왕실을 포함한 다양한 방이 9층의 건물에 위치하고 있고, 궁궐의 뒤로 라다크 산맥이 놓여있어 레 왕궁에서 레를 포함한 라다크 지역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 궁을 모델로 지어졌으나 19세기 중반, 침략자들에 의해 버려진 왕궁이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궁 내부의 기도실(참회실)만이 옛 왕조의 영화를 실감할 수 있다.

 

남걀 곰파에서 바라보는 레 전경

 남걀 체모 곰파는 라다크를 통치했던 남걀(Namgyal) 왕조 때 세워졌다. 남걀 왕이 라다크 일대를 통치하기 이전에 건축되어, 곰파 바로 아래에 있는 레 팰리스와 라다크 요새와 함께 라다크 왕조의 주요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규모가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갖가지 기교를 엿볼 수 있는 세밀하고 정밀한 건축물도 아닌 그저 작은 곰파에 불과하지만, 곰파 일대에서 바라볼 수 있는 레, 라다크의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남걀 체모 곰파를 지키는 수도승은 평소 두 명 정도로, 남걀 체모 곰파에 들르는 사람들은 모두 입장료를 내야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면 추가적으로 입장료가 더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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