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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Feb 22. 2019

<블루>(1993)


데릭 저먼의 <블루>는 자기 회고적 성향이 강한 영화다. 75분 남짓의 시간동안 영화는 푸른 색 화면으로 일관된다. 데릭 저먼의 <블루>는 맑은 하늘 같은 옅은 파랑도, 어둑한 밤 같은 진한 파랑도 아닌 '푸름' 자체다. 고장난 텔레비전이나 마감 이후의 방송 채널을 보는 듯 파랑의 채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감되지 않은 영상으로 느껴진다.


 데릭 저먼은 <블루>를 찍기 전부터 에이즈 합병증으로 고생했다(실제로 데릭 저먼은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1년 이후 사망했다). 병세가 악화되며 팔, 다리가 마비되고 시신경마저 온전치 못했다고 그는 기록한다. 에이즈와 몇 가지 암 증상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던 일들, 병세의 악화로 겪었던 고통들 등 에세이적 이야기들이 <블루>의 중심이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담담히 나레이션으로 들려주는 <블루>는 데릭 저먼의 유언과도 같은 영화다. 푸른 빛으로 가득한 하나의 이미지, 단 하나의 장면이 스크린에 쏟아지는 동안 관객들은 눈앞에 놓인 푸름의 이미지와 데릭 저먼의 나레이션, 그의 일기를 상상 속에서 결합시키게 된다.


 어두운 검은 색의 극장 안에서 파란 색의 <블루>가 상영될 때, 눈의 반사작용으로 '블랙'은 수축되고 '블루'는 팽창되어 결국 '블루'가 극장 전체를 지배했던 독특한 체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를 수록 철학과 탐미의 미학을 나열하던 데릭 저먼의 목소리(실제 나레이션은 배우들이 맡았다), 그가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기억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색은 결국 '블루'였던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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