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의 나라, 인디아
인도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무’에 능했다. 인도 최고신들의 수 백 가지 몸짓을 따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물려줄 정도로 ‘가무’에 대한 인도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때문에 국경일이나 축제날이라도 될라치면 인도의 길거리에는 춤과 노래의 다채로운 향연이 펼쳐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인도에서 메가 히트급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박자에 맞춰 따라 하기 쉬운 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춤과 노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발 벗고 달려간다. 물론 인도인들의 격렬한 ‘춤사위’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문화 중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우리의 눈과 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투낙 투낙 툰(Tunak Tunak Tun)’, 일명 ‘뚫훍송’의 가수 달러 멘디(Daler Mehndi)를 기억하시는지. 형형색색의 거대한 터번을 쓰고 경쾌하고 빠른 박자에 맞춰 팔다리를 흔들어대는 이 아저씨는 국내에 ‘코믹송’으로 알려지며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달러 멘디가 한국으로 치면 조용필급의 슈퍼 탑스타라는 건 아무도 모르셨으리라. 이쯤 되면 발리우드의 뜬금없는 뮤지컬 씬들이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실 거다. 그들이 영화에, 발리우드에 열광하는 건 곧 그들의 삶에서 춤과 노래를 제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나 영화 좀 봤소’하는 말을 들으려면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부지런해야 한다. 매 달 개봉하는 크고 작은 영화들의 합계는 어림잡아 80편, 이 모든 영화를 보려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인도의 난다 긴다 하는 젊은이들은 극장,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 모든 매체를 동원해서 이 많고 많은 영화들을 리뷰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유행을 선도하는 핫한 ‘패션’을 읽고 싶어서다. 사실 인도에서는 S/S나 F/W 신상을 위한 패션쇼가 필요 없다. 티켓을 끊고 극장에 가서 최근 개봉한 영화를 관람하면 충분히 시즌을 선도할 패션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자국영화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제 아무리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한다고 한들 인도에서는 자국영화 점유율의 1/10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케이블 영화채널의 종류만 스무 개가 넘을 정도의 열성을 가진 인도인들에게 ‘영화’라는 존재는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의 제작사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잘 알고 있기에 영화의 트레일러와 뮤지컬 씬(혹은 뮤직비디오)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게 공들여 만든 뮤지컬 씬을 개봉 전에 공개해 그 반응을 통해 영화의 흥행을 점친다. 전 국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대스타의 출연작이라도 나올라치면, 인도의 상점가들은 앞 다투어 미리 공개된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패션 리더들을 유혹한다.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부터 영화의 테마 곡에 맞춰 춤 연습을 하는 젊은이들을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연 중 수많은 히트곡과 유행을 선도하며 인도인들의 삶을 촉촉하게 다져주는 ‘발리우드’ 영화들. 재미있게도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인디언 패션 피플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던 발리우드 속 주인공들의 패턴은 매우 일관성 있게 발전해왔다. 한번 히트 친 대스타는 영원한 대스타인 셈. 1년 365일 변치 않고 꾸준히 사랑받아왔던 발리우드 속 패션 아이템을 살짝 공개한다.
인도에서는 선글라스 하나면 만사 O.K? 어이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발리우드 스타들의 시상식이나 시사회 패션만 하더라도, 대부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 물론 언론과 대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인도에서만큼 ‘선글라스’의 의미는 좀 색다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리우드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체로 강인함과 고독, 듬직함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다. 말과 싸움에 능하며 약자에는 약하게 강자에는 강하게 맞서 싸우며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권선징악 성향의 남자 주인공들은 악에 맞서 싸우는 고독을 견디기 위해 늘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그들의 매서운 눈매를 감추곤 했다. 비단 남주인공들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한 권력 하게 생긴 캐릭터들은 전부 까만 알의 보잉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한다. 샤룩 칸, 살만 칸, 아미르 칸 등 인도의 3대 남자 배우들을 비롯해 인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원로배우인 아미타브 바흐찬까지 그들이 사용하는 선글라스는 항상 불티나게 팔려왔다. 발리우드 스타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레이벤이 대세지만, 레이벤을 살 형편이 아닌 일반 시민들 또한 레이벤과 최대한 비슷한 선글라스를 시장통에서 구입하기 바쁘다. 인도 여행 중 선글라스라도 꺼낼라치면 주변에 앉은 인도인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온몸에 받는 것은 당연지사. <돌격 라토르>에서 악쉐이 쿠마르도, 선글라스 하나만으로 완벽한 1인 2역을 소화해냈다. 선글라스 하나면 그야말로 슈퍼맨 저리 가라다.
살만 칸 주연의 <엑 타 타이거>는 인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놀랄만한 변화를 일궈냈다. 주인공인 ‘타이거’는 첩보요원으로 그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타이거’를 연기한 살만 칸도 워낙 근육질 배우에 많은 인도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살만 칸이 시종일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 인도에서는 한때 이 때문에 ‘타이거식 스카프 두르기’라는 강좌가 유튜브에 올라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연중 습하고 더운 기온을 가지고 있는 인도 땅에서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스카프 접기를 연습하고 있는 장면은 코믹하고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체크무늬 스카프와 원색의 스카프를 번갈아가며 착용하는 살만 칸의 패션이 약간 생뚱맞기는 하지만, 스카프가 이슬람 여성들의 아름다움, 고귀함 등을 상징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패션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조금 올드한 조합이라 해도, 근육으로 무장한 단단한 몸매의 살만 칸이 스카프로 살짝 얼굴을 가린 채 그윽한 눈매를 보내는 <엑 타 타이거>의 뮤지컬 시퀀스들에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떨까? 발리우드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신과 같은 인도 미녀배우들은 모두 한 몸매, 한 얼굴 하시는 언니들. 그녀들은 영화의 로케이션에 맞게 옷을 입었다 벗었다 를 반복하며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된 노출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지킨다. 하지만 인도 여성들은 그녀들이 착용한 주얼리나 들고 있는 가방 등에만 신경 쓸 뿐, 남자들처럼 발리우드 주인공들의 의상을 답습하는 것에 멀리 떨어져 있다. 최근에 들어 꽤 많이 서구화된 탓에 델리, 뭄바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서양 못지않은 시원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여성들도 있지만, 인도의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들의 전통의상인 ‘사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의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리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나 핫한 파티를 갈 때도 그에 맞춰 다양한 재질의 사리를 챙겨 입는 등 그녀들은 자국의 전통의상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긴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사리를 구매하는 옷가게까지 따라가서 디자인과 가격을 조목조목 따지는 등의 진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장에서 만드는 일반 사리는 가장 싼 것이 4천 원 정도. 하지만 재질과 디자이너, 살롱의 입지 등에 따라서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가격으로 치솟기도 하는 것이 사리의 오묘한 세계. 인도를 여행할 때마다 사리를 한 벌씩 사 오곤 하는데, 꽤 비싸게 주고 산 사리가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착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할 정도로 외국인에게는 입지 쉽지 않은 옷이기도 하다. 옷핀 몇 개만으로 1분 내에 사리 입기를 클리어해버리는 인도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패션이란 이렇게 ‘전통’을 입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최근 북인도를 중심으로 사리를 입는 여성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인도 여성들의 ‘사리’에 대한 욕심은 하늘을 찌른다. 인도식 사리 입기의 포인트는 바로 길고 풍성한 머릿결을 소유하는 것. 하늘하늘한 사리의 질감과 맞춰 머리 또한 비슷한 느낌으로 정돈하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그 어떤 발리우드 영화를 보아도 쇼트커트 정도 길이의 짧은 머리 여주인공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인도의 그녀들이야말로 진정한 ‘패션 리더’가 아닐까.
*크래커 매거진에 동시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