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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r 04. 2019

인도의 숨겨진 여행지 (3) 디우


'디우(Diu)'는 인도 어디에서나 쉽게 갈 수 있는 지역은 아니다. 첸나이나 뭄바이 등의 남인도에서 출발한다면 기차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넘게 이동한 후 다시 밤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으며, 델리나 바라나시 등의 북인도에서 출발한다면 남인도보다는 수월하겠지만 역시 장시간의 이동을 피할 수 없다. 디우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거점으로 삼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 가볼까 하는 결심을 쉽게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디우는 반드시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적어도, 인도의 타 지역에서 받은 소음과 소란, 수많은 사람에 치여 우왕좌왕하게 되는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도시임은 분명하다.

 

디우는 바스코 다 가마의 발견을 통해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절을 지냈는데, 때문에 디우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톨릭을 믿는다. 디우가 무역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포르투갈은, 인도 공화국 설립 이후에도 디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크고 작은 싸움에 시달려야 했던 비운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포르투 시절의 풍습이나 건축들 대부분이 남아있어서, 어느 정도 관광에 이바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는 다른 인도의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에스타(낮잠)' 시간도 있다.


인도에서 몇 되지 않는 주류 면세 지역


인도의 주를 이루는 종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 등은 금주를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로 인도에서 술과 음주문화가 아예 금지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고대 인도에선 와인과 증류주를 토대로 한 주류 사업을 활발히 번영시켜 나갔으나 무슬림이 인도를 점령하고 무굴제국 시대가 이어지면서부터 주류의 제조가 전면 금지되었고, 이후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 강대국들의 통치를 받으며 와인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영국의 영향으로 인도에서는 여전히 상류층과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위스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최근에는 위스키 공장 투어 등 주류산업을 기반으로 한 관광문화도 생기고 있으며 남인도의 브루어리도 늘어가는 추세다. 인도에서 금주법, 금주령이 시행되었던 시기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약 30여 년 정도였다. 독립 직후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들의 다양한 규제가 하나로 통합되고 외국인 관광객이 폭증하면서부터 인도는 주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판매자와 구매자를 대상으로 각각 세금을 붙이고 주류를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을 꽤 면밀하게 따져가며 제한을 두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지역이 바로 고아, 디우, 폰디체리 등지의 도시들이다. 이들 지역은 인도가 영국의 지배 하에 있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과 프랑스 등의 국가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독립한 지역이기도 하다. 세 도시들은 인도에서 몇 되지 않는 주류 면세 지역으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델리나 뭄바이 등지에서 사는 맥주 1병의 가격이 위의 도시들에서 사는 가격의 2, 3배 정도는 되고, 타 지역보다 자유롭게 음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여행자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폰디체리나 고아는 기차역으로 인도 전역 어디서든 이어지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은 반면, 디우는 도달하기가 쉽지 않고 도시의 규모도 굉장히 작은 만큼 사람들도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쾌적하다.


대항해시대의 치열함이 남아 있는 '포트 디우'


디우에 가게 된다면 누구나 한 번은 들르게 되는 곳이 바로 '포트 디우'다. 포트 디우는 말 그대로 '디우의 요새'라는 뜻으로, 입장료가 없고 무료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이 때문에 혼자인 여행객들은 범죄에 노출되기가 쉽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포트 디우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 시절에 지어졌다가 인도로 속해진지 불과 50년 남짓이 된, 일종의 기념물이다. 포르투갈은 디우가 무역,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침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아주 커다란 요새를 지었고 그것이 바로 '포트 디우'였다. 대항해시대에도 나오는 '알퐁소 데 알브켈케(Afonso de Albuquerque)'가 포르투갈의 인도 지배 당시 초기 총독으로 임명되면서 인도의 남부 해안도시 '코친'부터 공략을 시작했는데, 코친 대신 고아를 손에 넣으면서 포르투갈은 디우, 다만(고아 포함) 등을 무려 450년 동안이나 손에 쥐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실제적으로 인도의 식민 지배를 포기하고 독립을 인정하면서 인도는 국가 기반을 새로 쌓아가는 동시에 빼앗긴 영토를 돌려받기 위한 절차를 아주 빠르게 밟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포르투갈령으로 운영되었던 도시들, 고아나 디우에 대한 반환 요구와 운동을 아주 강경하게 진행했다.


포트 디우의 입구


하지만 포르투갈의 당시 실권자였던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onio de Oliveira Salazar)'는 약 50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인도 내의 영토들은 포르투갈에 귀속되기에 반환의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며 해당 지역들이 포르투갈의 영토라 주장하였다. 인도는 인도대로 포르투갈 본국에게 고아, 디우, 다만의 반환을 요구했으며 이 갈등은 증폭되어, 결국 유럽 연합과 미국, 파키스탄 등에 요청한 중재에 실패한 포르투갈은 전쟁 준비에 들어갔으며, 같은 시기에 인도 또한 디우나 고아 등으로 공군부대, 해군부대를 배치하는 등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몇 년 뒤에 인도와 포르투갈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자국 병사들의 전력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던 포르투갈의 인도 점령 지역에 대한 항복이 차례로 이루어짐으로 인해 인도 내 포르투갈령의 모든 도시가 인도에 반환되었다.


포르투갈 군이 디우에서 철수하던 당시, 포르투갈 군은 포트 디우의 기술이 인도 군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포트 곳곳을 파괴하고 떠났다고 한다. 때문에 예전처럼 웅장한 요새의 모습은 좀체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치열함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포티 디우 내부. 예전의 대포는 포탄만 제거된 상태로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한적하게 산책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만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일행을 구하도록 하자.
아라비아해의 파도가 가까이 보인다.

신선한 해산물의 천국


디우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풍성한 해산물을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사시미나 초밥 등의 일본식 해산물 요리는 즐길 수 없지만 대신 포르투갈 요리부터 인도 전통음식까지 엄청나게 다채로운 요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오랜 시간 가톨릭의 영향권 아래 있었기에 베이커리도 발달해 있어 근사한 서양식 아침을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성수기(건기, 11월에서 2월 사이)에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대부분 여행자들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디우의 수산시장에서는 성수기와 비수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해산물들을 싼 값에 흥정해 살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비싼 값을 주고 먹어야 하는 랍스터는 거의 한국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배불리 파티를 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은 편이다.

사진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순서대로 해산물 비리야니, 구자라트 탈리, 랍스터 찜

 디우의 대표적인 식당은 ‘오 코롸이로(O'Coqueiro)’로, 이곳에서는 인도식 생선요리부터 서양식 브런치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하루에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다. 다른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새우튀김과 생선커리도 구자라트와 포르투갈의 퓨전식으로 요리되어 여행자들의 흥미를 돋운다. 다만 몬순시기(우기, 6월에서 8월 사이)에는 해산물이 잘 잡히지 않아 제공 가능한 요리에 제한이 생기니 이 시기의 디우 레스토랑들은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다문화, 다종교의 도시


도시 전체의 인구가 약 5만 명을 웃도는 이 작은 도시에 가톨릭, 힌두교, 무슬림, 자인교,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이 공존해 살고 있다. 대체로 힌두와 무슬림으로 나뉘어 있는 인도 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보기 드문 현상이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오랜 시간 동안 받았기에 도시 곳곳에 성당도 즐비하며 디우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자인교의 상징인 만자문(卍字紋)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디우의 해안도로는 거의 인도의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는 여행을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시바, 가네샤 등 힌두 신화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들의 성상을 만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가톨릭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십자고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우에서 스쿠터를 빌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사원과 교회들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역시 힌두사원이다. 굳이 힘써서 찾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앞에는 반드시 중요한 사원이 있기 때문에, 재미 삼아 들려보는 것도 좋다. 다만, 사원에 출입할 때는 복장에 유의하도록 하자.

시바신을 모시는 힌두사원 내부의 풍경, 힌두교의 상징이기도 한 '난디'가 있다.
여전히 증축 중인 사원도 만날 수 있다.
밤 중에 더 환하게 빛나는 교회와 성당들도 쉽게 눈에 띄는 디우의 풍경.

*위와 동일한 지역에 대한 짧은 소개가 <W korea> 2019년 2월호 '아시아를 누비는 힙스터의 여행법 vol.2'에도 기재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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