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코다이카날'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인도 사방팔방을 돌아다녀보아도 코다이카날만큼 맛있는 수제 초콜릿을 판매하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함피에서 들은 직후 다음 도시는 코다이카날로 가겠다고 마음먹고 급히 정보를 찾았다. 한국 사람들은커녕 동양 여행자도 별로 보이지 않는 이 낯선 도시를 찾게 된 건 결국 '초콜릿' 때문이었다. 가는 차편도 마땅치 않아 물어 물어 함피에서 호스펫으로, 호스펫에서 로컬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나서야 도착했던 코다이카날. 나는 이곳에 금세 매료되어 생각했던 날짜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해발 2,100미터를 웃도는 관광도시인 코다이카날(Kodaikanal)은 1800년대에 이곳을 찾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발견되어 개발된 곳이다. 영국인들에 의해 개발된 인도의 다른 휴양지들과는 다른, 조금 독특하게 탄생된 곳이다. 도시 자체의 해발고도가 높다 보니 찌는듯한 한여름에도 최고로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20도 정도이며, 겨울철에는 평균적으로 10도 내외를 유지할 정도로 쾌적한 곳이다. 인도 남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더위를 피하기 제격인 곳이며 남쪽 인도인들의 손에 꼽히는 대표적 휴양지다.
외국인들은커녕 인도인들도 잘 찾지 못하는 코다이카날은 100여 년 전에 세워진 국제학교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국제학교는 '코다이카날 인터내셔널 스쿨(KIS)'이라는 곳으로 영미권의 명문대학으로 진학을 위해 전 세계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진학하는 곳인 만큼 그 경쟁도 치열하다. 아이비리그를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도 더러 있고 이와 비슷한 사립형 국제학교들이 최근에 제법 늘어난 덕분에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인도의 코다이카날로 유학을 계획하는 부모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렇기 때문에 코다이카날에서는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을 마주할 수 있으며 곳곳에 세워져 있는 교회들과 다국적 식당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것들이 국제학교에 입학한 학생들과 부모들을 위한 상업시설들로 지어졌지만 여행자도 그와 함께 상당한 덕을 보고 있다.
내가 코다이카날에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기온 때문이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강력한 인도의 한여름은 코다이카날엔 존재하지 않았다. 버스가 코다이카날 근처에 들어서자마자 배낭 깊숙하게 넣어둔 겉옷을 자동적으로 꺼내어 입게 될 만큼 서늘했다. 45도를 웃도는 남부 땡볕의 더위에서 20~25도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코다이카날로 들어섰을 때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입성한 느낌이었다. 산간지방이다 보니 기온이 서늘하고 청명하여 하늘도 다른 곳보다 맑고 예쁘게 보였고, 숲에 둘러싸여 있어 공기 또한 쾌적했다. 이렇다 할 관광지는 많지 않지만 이 곳에 오랜 시간 머물었던 이유도 바로 이 공기의 질 때문이다. 코다이카날 근방은 구획 발전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도로 상황이 좋거나 고속버스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이 때문에 자동차의 매연이나 릭샤들의 시끄러운 소음도 다른 지역의 1/3도 되지 않는 정도라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코다이카날에서는 그저 숨만 쉬어도 몸과 마음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코다이카날은 자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더없이 좋은 산악 드라이브 코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자동차가 없어도 상관없다. 코다이카날은 산책과 트레킹에 최적화되어 있는 곳으로 두 발만 있으면 어느 산이든 어느 골짜기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영미권 외국인들이 모여 있는 만큼 트레일 러닝과 러닝을 호수와 산을 끼고 즐기는 사람도 많다. 딱히 러닝화나 등산화가 없어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에서부터, 전문 장비를 가지고 암벽을 오를 수 있는 구간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산악자전거를 대여하는 사람도 크게 늘어서 관련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
코다이카날은 타밀나두와 케랄라에 걸쳐 있는 팔라니 힐즈(Palani Hills)의 산맥에 걸쳐 있는 곳이다. 남인도에서도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팔라니 힐즈 국립공원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코다이카날을 둘러싸고 있는 숲에는 다른 인도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야생화와 들풀들, 희귀한 나무들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견하고 있어 산책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깨를 견주며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고, 그저 호숫가를 한 바퀴 산책하며 인도의 타 지역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서늘한 기온과 함께 자연을 즐길 수도 있다. 코다이카날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서비스도 운영되고 있지만 가이드가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코다이 호수 근방을 걷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노점상 등에서 기념품을 사도 좋다. 특이하게도 이 곳엔 조개로 만든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산간 지방에서 조개로 만든 기념품을 팔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노점상에게 물어보니, 이는 전부 케랄라 해안 지방에서 공수해온 것이라는 대답을 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도에서는 무척 생소한 계단식 폭포를 만날 수도 있다.
코다이카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더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다. 코다이카날의 호수가 시작되는 폭포인 '실버 폭포'라든지 무루간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안다바 사원, 여전히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으로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는 '글렌 숲' 등을 만날 수 있으나, 초행길에 이렇게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이동 차편과 가이드가 필요하니 시내에 위치한 코다이카날 관광안내소에서 미리 조언을 구하든지 혹은 사설 여행사에서 가이드를 구하는 것이 좋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나는 코다이카날에 '수제 초콜릿'을 찾기 위해 방문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더운 한여름의 남인도에서 도대체 어떻게 맛있는 초콜릿을 고형의 모양 그 자체로 유지해 판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코다이카날에 도착한 직후 말끔히 사라졌다. 기온 자체가 초콜릿의 보관과 유통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코다이카날 시내를 가로지르는 '클럽 로드' 근처에 식당이나 상업시설의 대부분이 포진해있는데,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나를 자꾸 유혹해서 이미 초콜릿을 한 보따리 숙소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추가로 구매하곤 했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초콜릿을 취급하고, 특히 공기가 차가워지는 겨울 시즌에 판매하는 핫초코는 정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따듯하다. 단점이 있다면 한국의 수제 초콜릿만큼은 아니지만 인도의 물가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이라는 점, 그리고 코다이카날 지역을 지나면 또다시 기온이 한없이 솟구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초콜릿을 사들고 간다고 한들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코다이카날에서 생산된 초콜릿은 코다이카날 내에서 밖에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판매하는 초콜릿은 기차와 버스를 타고 수 십 시간을 내달려 와도 전혀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맛을 보장하기 때문에 휴양을 즐기고 더위를 피하러 온 여행자들에게는 별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