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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r 18. 2019

인도의 '테러방지법'

 힌두와 무슬림이 공존하는 인도는 소위 말하는 '테러방지법(국민 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의 발동과 폐지를 반복해왔다. 폐지의 이유는 프랑스를 포함한 다수 국가들, 즉 국제적인 사례들과 비슷한 이유다. 종교적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인권단체들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테러방지법 조항에는 종교적 자유 침해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생활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을 정도의 인권침해 조항이 있기에 절대 발현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컸다. 하지만 해당 집권기의 다수 여당/혹은 다수 야당의 투표와 점거로 인해 때때로 이 '테러방지법'은 가동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테러방지법' 자체를 악법이라 지적하여 팽팽하게 대립한 이 나라가 미주권도 아니고, 유럽권도 아니고, 동아시아권은 더더욱이 아닌 '인도'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극단론자들의 테러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잦은 인도 말이다.


 문제는 인도에서 테러방지법이 실시되었던 바로 그 기간이다. 그 기간 중에 수많은 무고한 이슬람인들이 경찰과 군인에게 잡혀가고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첫 번째 '테러방지법'이 적용되었을 때는 농민과 광부, 군인을 포함한 90명 남짓의 시민들이 끌려갔고 고문당했다. 공식적인 숫자만 84명이었다. 이 중에는 12, 13세 정도의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무슬림으로, 극단 이슬람주의자로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 주장이라는 것은 '의심', 그리고 이들과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놓여있을지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를 '제보'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와 대척점에 서 있는 누군가를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종교와 국가적인 프레임을 씌워 '테러리스트'로 규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 신고를 받고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국회 통과와 실제 적용까지, 그리고 이 법의 진정성에 대해 재논의가 펼쳐지고 또다시 폐지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년 정도였는데, 불과 이 1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단 1년 만에 인도의 각 주를 포함해 국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던 무수한 무슬림들이 죽었다. 다시 강조하면, 그들 중에는 백골로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며 여전히 실종 상태인 사람들이 있다. 그 수를 공식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이때 적용된 테러방지법은 다음과 같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1. 의심되는 자에 대한 90일 이상의 구금이 가능하게 할 것

2. 의심되는 자에 대한 도청 감시가 언제든 가능하게 할 것

3. 경찰과 군인의 임의 하에 불시 면담과 소환조사가 언제든 이루어지도록 할 것

4. 국가에서 지정한 테러방지법의 위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용되게 할 것


 문자 그대로를 따지고 보아도 상당한 폭력이 읽히는 이 법은 결국 통과되었다. 그 파장은 이후 테러방지법이 임시 폐지된 이후에도(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이 법의 위험성을 감지하여 일찌감치 법 제정과 법 적용에 대응하여 싸우려 했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테러방지법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사람은 인권변호사 '샤히드 아즈미'로, 그는 정부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샤히드 아즈미는, 무분별하게 끌려가고, 도청에서부터 살해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구금으로 인해 고문받고 인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을 위해 싸움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살해당했다. 샤히드 아즈미를 살해한 사람은 인도 정부가 그렇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걱정스럽다 주장했던 '테러분자'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샤히드 아즈미를 지켜봤던 우유배달원이었으며, 그는 당시 집권여당과 같은 종교를 믿는 힌두교도이자 힌두 극우단체의 회원이었다.


샤히드 아즈미를 토대로 만든 한살 메타의 영화 <샤히드>의 한 장면


 인도의 '테러방지법'이 정말 인도 내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답은 '아니'다. 인도의 테러방지법은 총리령의 나머지 두 개 법인 '국군특별권한법(AFSPA)'와 '불법활동방지법(UAPA)'과 함께 보완, 수정되었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 법이 폐지된 가장 큰 이유는 인권단체의 의혹도, 투표에 의해서도 아닌 여/야간의 싸움 때문이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결국 법 자체가 여/야 각자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폭탄사고가 일어나는 인도에서조차 테러방지법은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현재도 여전히 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란이 인도 각지의 언론을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야 그때 당시의 일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 '5.18 민주항쟁'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섣불리 삼풍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인도는 지금에서야 이 화두를 꺼내놓고 논쟁을 재점화시키고 있다. 이제야 다수의 인도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테러방지법'이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 법은 그저 소수종교를 탄압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억누르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직도 샤히드 아즈미의 일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가 견뎌야 했던 폭언과 폭력, 도청과 협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낳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법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 사고들이 십 수년이 지난 현재, 그리고 그 이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국경지대에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거나 죽어나가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폭력의 주체가 지방경찰이나 지방 군인, 혹은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로 한정되어있기에 잡지나 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되지 않을 뿐이다. 이 폭력의 주체가 ‘국가’가 된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불 보듯 뻔한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 일이 과연 힌두/무슬림을 품고 있는 다문화/다종교 국가인 인도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정말 먼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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