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수 없었던 노래

9와 숫자들 '착한 거짓말들' 노래 소설

by 강민영

노래를 좋아하는 방식은 저마다 제각각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노래를 정말 보물처럼 아끼며 특별한 날에만 선곡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노래를 위주로 플레이리스트를 짜거나 하루 종일 귀에 달고 살기도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의 성향이 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끼지 않고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 선율 하나 놓치지 않으려 반복해서 그 노래를 쥐어짜듯 듣는 타입.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꾸준하게 파고들어가다 못해 기어이 바닥까지 보고야 마는 타입. 그런 나에게 노래 한 곡에 빠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가령, '9와 숫자들'의 '착한 거짓말들' 같은 노래가 그랬다. 나를 ‘9와 숫자들’이라는 밴드의 세계로 이끈 이 ‘착한 거짓말들’이라는 노래를 나는 정말 많이 들었다. 노래의 첫 음만 들어도 그다음 가사가 술술 흘러나와 내 입모양만으로도 노래 하나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모든 랜덤 플레이리스트들 속에서 가장 쉽게 손에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늘 이 노래가 있었다. 다른 어떤 곡보다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다른 모든 곡들보다 우위에 있던 존재. 그 노래를 나는 지난여름에 내 핸드폰의 음악 보관함에서 지워야 했다. 그 여름의 초입에 K가 죽었기 때문이다.


K의 죽음과 ‘착한 거짓말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K와 ‘착한 거짓말들'이라는 노래를 알지만 K는 '9와 숫자들‘도 '착한 거짓말들‘도 모를 것이고 그 반대로 그 노래를 부른 '9와 숫자들‘ 또한 당연하게도 K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세 가지 것들 전부와 연결되어 있는 나는 더 이상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K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노래의 모든 운율에 K가 녹아져 있지 않은 부분은 없었고, 노래 속의 모든 가사의 모든 마디가 전부 K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죽은 K를 깨워 ’네가 이렇게 살았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었기에(혹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기에) 나는 그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 그러니까 내 핸드폰에서 그 노래를 영원히 삭제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 그 노래를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가 '착한 거짓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쏟았던 마음과는 정확히 반대의 방향으로, 그것이 K를 위해서인지 그 노래를 위해서인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그렇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 정말 몰랐어

네가 직접 말을 안 해주어서'


K는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정확히 15년이 되던 그 여름에 애틀랜타주의 한 목조식 건물의 창틀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자살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렇다 할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했고 K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지 사흘 뒤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K는 20년 전 나의 첫사랑이었고, 나는 그와 간간히 희미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를 없는 자식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숨 쉬듯이 했던 K의 어머니와도 얕은 안부를 물으며 살고 있었다. 20년 전의 첫사랑 그리고 그의 가족과 어떻게 연락을 끊지 않을 수 있었느냐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나와 K가 만나게 된 현상도 뭐라 정확하게 판단하고 진단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K와 나는 만남과 헤어짐이 불분명한 상태로, 이 세계와는 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갇힌 채 떠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K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늘 K가 나와 완전히 겹쳐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K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처음 들었을 땐 별다른 감응이 없었다. 원래 없던 것이 잠깐 세상에 생겼다가 다시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니까 다만-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이런 방법으로 이런 과정으로 K라는 세계가 영영 나에게서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유서도 유언도 남기지 않은 상태로, 몇 개월 전 마지막 통화에서도 별다른 말이 없이 묻던 안부를 다시 열지 않고 그대로 덮어둔 상태로, 곁에 아무도 두지 않고 홀로 외롭게, 내가 가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완전히 낯선 공간에서, 그렇게 죽어버릴 수는 없는 거였다.


K와 나는 각각 다른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K도 나도 서로의 친구를 잘 몰랐다. K의 사건을 나는 그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당연히 K의 죽음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나만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하필이면 그 생각이 들던 그 순간 듣고 있던 노래가 ‘착한 거짓말들’이었으며 그 노래의 모든 부분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K의 면면과 몹시 닮아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의 물질에 K의 모든 것을 입히고 나니 갈 곳 잃던 분노와 슬픔과 허망함의 감정들이 한 데 모여 명확한 하나의 지표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이 노래는 들을 수 없어, 이 노래는 K의 이야기야, 그런 생각을 나흘 내내 밤낮으로 반복해서 하던 나는 결국 ‘착한 거짓말들’을 삭제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그 노래는 세상에 없는 노래,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노래가 되었다.

여름이 한창 깊어질 즈음 나는 ‘9와 숫자들’에게 푹 빠져 9주년 기념으로 매월 9일에 하던 공연을 거르지 않고 보러 갔고 그 노래를 제외한 다른 노래들을 열심히 들었으며 그간의 플레이리스트 순위 또한 바뀌었다. 공연은 매달 다른 컨셉으로 열렸지만 그 노래가 셋리스트로 등장할 수 분위기는 대체로 아니었으므로 나는 한동안 그를 잊고 잘 지낼 수 있었다. 사건은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즈음 있었던, 나에게는 ‘9와 숫자들’의 네 번째 공연에서 일어났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대에 등장 할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노래가 ‘9와 숫자들’의 골수팬들도 의아해하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철을 온전히 쏟아 나의 모든 일상에서 절대 떼어 내지 못했던 바로 그 노래가, 귀를 막을 틈도 없이 귓가에 침입하는 그 순간 나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도 그를 피해 숨을 수도 없었다. 다만 눈을 감을 밖에, 그저 시선을 차단할 밖에. 하지만 눈을 가리니 더욱 생생하게 들려오는 ‘착한 거짓말들’의 모든 음절이 너무나 생경하고 안타까워서, 나는 그날 그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들으며 참 많이 울었다. 공연자들의 눈을 피해 내 옆에 앉은 관객들의 시선을 등친 채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그 모든 선율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착한 거짓말들’이라는 노래가 ‘들을 수 없는’에서 ‘들을 수 없었던’ 노래로 바뀌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있지만 이제는 없어져버린 K는 두 번 다시 나의 생애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그로 인해 지금 이 시간부터 그 노래와 K는 나에게 있어 각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리란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슬퍼, 나는 그날 마르지 않는 눈물의 흔적을 지우고 숨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서 삭제한 단 하나의 노래, 휴지통에 아직 남아있는 희미한 회색빛의 노래를 원래의 플레이리스트로 되살려내는 작업을 했다. 몇 초 만에 순식간에 다시 나의 리스트에 복귀되는 그 작은 파일을 보고 있으려니 20년이 넘도록 알고 지낸 K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그의 잔상을 기억해내려 애를 쓰다 지쳐 잠이 들었다. 이것이 그 여름의 마지막 밤이었다.


https://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36241&trackId=335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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