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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소마> 리뷰

by 강민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에 읽어주세요.
*만일 '신체 훼손'에 대한 격한 거부감이 있다면 <미드소마> 관람을 피해주세요.
*<유전>이 취향에 맞지 않았다면, <미드소마>는 훨씬 더 견디기 힘듭니다. 관람을 피해 주세요.


<미드소마>에 관해서 이번 달에 서울 모처의 서점에서 이야기하는 행사가 있고 방송에서도 한 번, 그리고 <유전>과 <미드소마>를 묶어 글을 하나 써야 하기에 <미드소마>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기로. 지금은 막 영화를 보고 나온 단상과 전반적인 첫인상을 간략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사실 데뷔작인 <유전>이 몹시 좋았고 그 영화는 1년 내내 떠들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나를 만족시켜준 호러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 에스터 감독이 '소포모어 징크스(첫 번째 결과물보다 두 번째 결과물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징크스)'를 가지게 되지 않을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미드소마>를 보았다. <유전> 관람 때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가고 싶진 않았고 오로지 제작사에서 뿌렸던 두 편의 예고편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를 가늠하긴 했지만 역시 뚜껑을 열어보니 트레일러는 큰 연관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드소마>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하지제'에 관한 이야기로, 넓은 의미로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낯선 사람들이 90년 만에 9일 동안 열리는 이 이상한 축제에 초대되는 것이 발단이다. 결과적으로 이 축제에 초대된 이방인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데, 단 한 사람인 '대니(플로렌스 퓨)'만 '미드소마'가 열리는 이 커뮤니티에 편입되어 생존한다. 대니가 살아남게 되는 이유는 바로 커뮤니티 밖 그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으며 완벽한 가족의 붕괴를 겪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기대어 살던 가족들이 돌연 자/타살로 인하여 사라져 버리고, 극심한 아픔과 고통을 겪어내고 있을 때 '바람이나 쏘이러 갈까'했던 스웨덴행은 결국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그녀를 이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되게 만든다. 대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미드소마'의 제물이자 도구로 살해된다.

<유전>이 어둠의 호러였다면 <미드소마>는 밝음의 호러로, 두 영화는 장르가 다르다. 여전히 '정상적'이라는 평가되는 가족의 모습을 완전히 박살 내는 서사와 상실에 대한 고통은 겹치지만 정 반대에 놓인 영화다. <유전>이 되돌아가게 만드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추리하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한다면 <미드소마>는 영화가 깔아놓은 모든 지뢰와 단계를 밟으며 차근차근 결말로 인도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영화로, 호러영화로의 기승전결은 두 영화 모두 동일하게 탄탄하지만 <미드소마>의 경우가 좀 더 대중적이고 무난하게 여겨진다. 영화를 보며 걱정되었던 부분들, 이를테면 '이 정도에서 더 나가면 어쩌지?' 혹은 '설마 이게 전부 다 몰살되는 건가?'라는 걱정들을 지워주고 선을 넘지 않는 그야말로 웰메이드의 전형. 다만 장르적으로 <미드소마>는 완벽히 호러라기보단 호러의 변주로,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공포'를 넘어서는 기분 나쁜 찜찜함을 아주 밝고 쾌활한 화면으로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다. 모두가 미쳐있는 것처럼, 영원히 밤이 오지 않고 영원히 잠이 들 수 없을 것과 같은 고통. 지금이 몇 시인지 며칠이 지났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와중에 흐르고 있는 시간들,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몸, 그 와중에 희미하게 깨어 있는 정신. <미드소마>는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 미쳐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말 완벽하게 묘사한 영화다. <유전>이 '그런데 말이야, 사실 이건 이런 거 아닐까?'라며 뒤늦게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면 <미드소마>는 복선 없이 정확히, 그리고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가다 결말을 맺는 영화다. 종종 숨을 멈추고 보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체 훼손의 강도가 조금 더 심했다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정신없는 살육전이 되고 그에 따른 복선과 설명이 또 필요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아리 에스터가 지금과 같은 결로 영화를 만든다면, 호러가 아닌 다른 장르도 기대해볼 법하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니 아리 에스터 감독이 좋아하는 장면과 집착하는 장면, 장점들이 명확하게 보여 상실과 이별에 관한 아주 그로테스크한 드라마를 한 번쯤 기대해보고 싶다. 하지만 당분간은 호러만 만들어주시길. 한여름에 이런 완벽한 공포영화를 마주하기란 요즘엔 하늘의 별 따기와 같으니, 모두들 부디 여름이 끝날 때까지 오래도록 '해피 미드소마'를 보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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