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영화, <조커>
토드 필립스 연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 리뷰
애초에 <조커>의 주연으로 호아킨 피닉스가 낙점되었을 때부터 <조커>에 거는 기대감은 동일할 수밖에 없었다. DC나 마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토드 필립스가 연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 영화는 그냥 호아킨 피닉스의 독무대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분명히 뛰어난 배우이며 그의 수많은 필모들을 보고 있으면 <조커> 이상의 연기를 보인 것도 많지만, 나같이 <글래디에이터>의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며 때로는 동정심마저 내비치는 호아킨 피닉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커>의 단독 스포트라이트를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 역 정도로 기대하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조커>는 분명 잘 만든 영화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정말 더 하고 덜 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너무 정확하고 명확하며 때로는 분에 넘치게 떨어져 그의 원 맨 쇼나 다름없는 장면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서사적으로나 연출이나 음악이나 빠질 것이 없었다. 다소 길지만 그만한 감정선이 쌓여가다가 폭발하는 지점부터 완전히 영화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도 안정적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커>가 주는 메시지 때문이다. 퀄리티나 배우의 열연을 차치하면, 어떤 부분에서 <조커>는 불편하고 불쾌하다. 불쾌함의 이유는 '아서'라는 고담 시민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아서에서 조커로 변한 이후의 태도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연쇄살인범의 욕망을 합리화하여 그를 '짠하게' 만드는 지점이 <조커>의 가장 큰 잘못인 동시에 이 영화를 두 번은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확고하게 굳혀주었다. 수많은 가면들 사이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군중 속으로 사라진 후 시민들의 분노와 어떤 저항운동 뒤에 숨어 마치 혁명이라도 하는 듯 의기양양한 장면들. 이것들은 전부 후반부부터 이어지는데 <조커>가 견딜 수 없던 지점은 이것들을 통해 살인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거대 자본이나 혹은 부조리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는 다수의 시민, 다수의 운동들을 그저 '폭동'과 '광기'로 일반화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원작과 원작을 비튼 여러 영화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조커>의 캐릭터는 너무 소비적이며, 조커가 저지른 살인에 열광하는 고담 시민들로만 이 세계의 하층민들, 일반 시민들을 그려낸 것은 영화 내적이나 외적이나 너무 안일한 선택이었다.
때문에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 있든, 영화가 연출 서사적으로 얼마나 완벽하든 하여튼 모든 장점들을 곱씹어 본다고 해도 이 영화를 추천할 생각은 없다. 원래 조커는 그런 캐릭터라고 한다 치더라도, 그에 대한 동정심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그가 저지른 특정 계급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살인을 우매한 시민에게 돌려버리는 태도는 옳지 못했다. <조커>가 향유하여 전파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겨움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조커' 캐릭터로 묘사되어 정당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진영논리는 이미 많이 보아온 모 커뮤니티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지.
<조커>를 보고 나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묘사한 '조커'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위치하는 것에 대한 영화적 윤리를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크나이트>를 히어로 무비 중에 가장 좋아하지만(대체로 내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광팬 이어서겠으나) <조커>를 보고 난 후 <다크나이트>를 반사적으로 보고 싶어진 까닭은 <다크나이트>에는 저런 불편함이 없고, 저런 안일한 고민이 없어서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조커>의 조커는 분명 다르고 여러 가지 이유로 분리되어 있는 캐릭터이지만, 영화의 윤리나 캐릭터를 통해 사회의 어떤 문제를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밖에 없는 시각 속의 히어로 무비에선, 나는 <다크나이트> 같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추가로 이 영화를 보고 조커의 모든 폭력들이 공감이 된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셔야 한다. 적어도 그런 생각을 가지기 전에 조커가 행하는 망상과 여성 대상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돌아보시길. 히어로든 무엇이든 일단 원맨 픽션이 나오면 자신에 대입하고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 이며 사회적인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는 꼴이 아닐지. 하물며 ‘White male rage’라 조롱받는 ‘백인남성’인 이 인물에 과몰입힌다면 위험한 수준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를 붙이는 이유는 당장 네이버 영화에만 들어가도 이 영화를 통해 폭력을 정당화하고, 살인을 정당화하며,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것에 '정의'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 역겹고 불쾌한 댓글과 평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