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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Aug 22. 2020

<테넷> 리뷰

*스포일러는 중반 이후 내용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부터 표시해두었습니다. 



자타공인 크리스토퍼 놀런의 팬으로, 시간대는 상관없이 가장 먼저 신작인 <테넷>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두 개의 관을 예매해두었다. 하지만 지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인하여 예매해둔 관이 전부 취소 및 환불되고, 관람석을 축소해 프리미엄 시사라는 명목으로 21-22일 주말 동안 두 타임 정도를 대형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 탓에, 실제 개봉일인 26일보다 조금 더 빨리 <테넷>을 볼 수 있었다. 워너에서 한국의 코로나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굳이 개봉일을 며칠 앞두고 주말 시사를 강행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 와중에 <테넷>을 가장 먼저 보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섞여 있어, 마주치는 사람 없이 두꺼운 마스크를 얹고 소독제를 손에서 마르지 않게 해가며, <테넷>의 최초 관람을 마쳤다. 주말 사이 용산CGV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용산 관은 관람이 닫혔고, 애당초 용아맥 표를 얻지 못한 나는 돌비시네마를 이용한 것이 오히려 안도로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테넷>이 개봉하면 용산아이맥스 레이저든 돌비시네마든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볼 것이었고 그중에 돌비시네마 관람을 먼저 하게 된 것인데, 다른 놀란 영화와는 다르게  <테넷>은 유일하게 아이맥스 관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덩케르크>처럼 포맷을 달리하여 육/공/해의 시퀀스를 나누지도 않았고, <다크나이트>처럼 도시의 어둠을 깊게 조망하는 장면, <인셉션>처럼 만들어진 가공의 도시를 이어 붙이거나 재조합하는 장면 등이 일단 등장하지 않고, 영화의 주제가 웅장하고 거대한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보다 '시간 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테넷>에 등장하는 액션들은 대체로 스케일은 크지만 사운드가 집약된 곳에서 관람하기 좋은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테넷>에는 앞서 말한 놀란+아이맥스로 여겨지는 이른바 '놀맥스' 스러운 장면이 많지 않다. 아이맥스 재관람을 하긴 하겠지만, 장면 손실에 대한 예민도가 다른 놀란 영화만큼 적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듯하다.



<테넷>을 관람하기 이전에 물리학, 역학,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인버전' 등에 대해 공부하고 봐야 할 만큼 영화가 난해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사실 이런것들을 모르고 봐도 전혀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주요 이론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를테면 <인셉션>을 꿈의 꿈, 림보 등의 단어들에 대해 모르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른 장치들이 영화를 잘 받쳐주고 있었는데,  <테넷>도 그와 비슷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알고 보면 더 좋고 분명 <테넷>의 여러 가지 과학적 고증에 대해 설명하는 분들이나 그런 칼럼들이 쏟아질 테지만, 놀란의 영화를 오랜 시간 지켜보아 왔을 때, 놀란은 이론에 집착해 전체 서사를 망가트리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만일 <인셉션>이 그랬다면 그의 역작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스텔라> 또한 마찬가지. 그런 점에서 <테넷> 또한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비록 놀란의 '역대급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떡밥을 처음부터 던져 놓고 전부 하나씩 회수하고 갈음하는 솜씨가 꽤 오랜만이라, 개인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또는 내용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멘토>를 제외한 크리스포터 놀란의 모든 영화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테넷> 또한 스포일러를 안다고 해서 영화 관람에 크게 제약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일러 표기를 해놓은 이유는, 좀더 <테넷> 내에 대한 내용의 장점과 단점들을 자세하게 설명해보고 싶어서다. 언젠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을 솎아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겠지만, 간만에 <테넷>은 시퀀스별로 분류해두고 샷 바이 샷으로 영화 전체를 조망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완성도나 연출력 등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재미가 있었다. 그건 '인버전(Inversion)'이라는 개념이 <테넷>을 통해 재창조 되었기 때문이다.


<테넷>의 예고편에서도 미리 공개되었지만, 이건 '시간여행'이 아니라는 설명이 명확하게 나온다. 시차를 두고 사건과 사건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 주요 소재지만 어쨌든 <테넷>은 이걸 '시차여행' 또는 '순간 이동'이라 이야기하지 않고 '인버전'이라고 표현하는데, 앞서 놀란이 '인셉션'을 다른 영화적 의미를 덮어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영화에 풀어냈듯, '전도' 또는 '전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인버전' 또한, <테넷>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로 덧입혀졌다. 표면상으로 시간의 이동이 맞지만, 단순 1인 또는 2인의 소규모가 아닌 부대 하나를 통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과학기술이고 이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인 동시에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존재하는 악당들이다. <테넷>의 초중반은 이 '인버전'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확히 중반부터 '인버전'이 더 이상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사건으로 보일 때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테넷>의 골자는 '인버전'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악당에게 스위치를 주어 인류의 전반을 위협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첩보영화다. 놀란 스타일로, '옛날 옛적이...'의 발단 설명을 날려 버리고 바로 현재의 장면부터 시작해서 그 앞뒤를 관객에게 스스로 조율하도록 설정하는 연출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테넷>은 정확한 타임라인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인셉션>처럼 무의식과 무의식 간의 이동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를 잇는 사건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고, 또 미래에서 어떻게 과거인 현재로 내려와 이런 설정들이 이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실험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이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놀란의 다른 영화들보다 상당히 골치 아픈 영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빌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는 말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는 유려한 액션씬들 속에 무언가 이상한, 혹은 기시감 같은 것을 심어 놓고 그것들을 나중에 전부 회수하며 영화를 닫는 방식의 연출은 크리스토퍼 놀란 말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법이라 생각하여, <테넷>의 관람 또한 놀란 팬임을 차치하고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놀란의 역작이라고 하기엔 서사의 전개보단 액션의 나열에 집중한 영화임이 분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제법 많다. 첩보물 장르로만 생각하고 <테넷>을 대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전개에 무척 놀랄 것이 분명하고, <테넷> 자체가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단 그냥 눈 앞의 것을 바라보고 즐기라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타임라인을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회차관람이 필수라 느껴진다. <메멘토>만큼의 역대급 반전은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전반부에 던져놓은 이상한 파편들을 수집하는 재미도 있고, 카메라가 무심하게 훑고 지나간 지점들을 스스로 찾아가며 무릎을 치는 지점들도 재밌다. 아쉬운 지점이라면 '인버전'의 집약이 모여있는 후반부 클라이맥스 액션씬이 너무 충분한 설명 없이 치고 들어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정도다. 



미래가 과거를 공격하고, 과거가 미래를 받아친다는 소재를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확실히 놀란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스무드하게 근본적인 인간의 갈등이니 공존이니 하는 것들을 무심하게 툭툭 중간중간 던져 내는 연출력도 역시 놀란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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