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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30. 2020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디렉터스 컷)



<킹덤 오브 헤븐>은 리들리 스콧의 영화로 이미 2005년에 정식 개봉되었던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 리들리 스콧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챙겨보지 않았던 이유는 감독판에서 60분이나 잘려 개봉하는 탓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개연성이 떨어져 마치 뮤지컬 신을 전부 삭제한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미리 들었기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극장판의 러닝타임은 130분 남짓, 감독판의 러닝타임은 엔딩 롤 포함 190분이 넘는다. 여하튼 별 관심 없이 미루던 이 영화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롯데시네마에서 11월 단독 개봉을, 그것도 디렉터스 컷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개봉에 앞서 월드점 슈퍼플렉스G관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예매해 관람했다.


결과적으로, 감독판을 애타게 기다리며 소위 '존버'한 보답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포맷으로 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스크린이 큰 극장이 답이다(사운드 특화관이면 더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롯데시네마엔 돌비사운드를 메가박스 돌비처럼 구현하는 관이 없다). 그러니 슈퍼플렉스에서 상영한 버전을 본 것이 너무 다행일 수밖에. 때문에 간략히 감상을 적어둔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 윌리엄 모나한 각본. 두 사람의 만남이 시사하듯 <킹덤 오브 헤븐>은 엄청난 대서사시의 전쟁/역사 영화로 고증에 아주 충실하지만 사실과 다른 지점이 많은, 일종의 '팩션'이다. 3차 십자군 원정 시기에 벌어진 이야기를 토대로, 실존 인물인 '발리앙 디블랭'을 주로 한 전쟁영화다. 한센병이 창궐하지만 딱히 치료법이 없던 시기였고 잦은 전쟁으로 흉흉한 시기였다. <킹덤 오브 헤븐>은 이 시기의 예루살렘을 토대로 주로 발리앙과 살라흐 앗딘(살라딘)의 대적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다만 대다수의 서구권 교육을 받은 나라에서 다루는 '십자군'과 다르게,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없는 평등한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어 개봉 당시에는 몹시 주목받았다. 나 역시도 한국의 세계사 교육에 있어 십자군이라는 단어는 서구 편향적인 상징이 있다 생각하고 있어, 그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영화로서 아주 만족스러운 지점들이 있었다.


올랜도 블룸,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에바 그린, 제러미 아이언스 등등 엄청난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거의 히어로 역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주인공 발리앙 역할을 올랜도 볼룸이 잘 소화하다 보니, 그가 등장하는 장면만 보더라도 사실 미적 충족도는 손색이 없다. 완벽한 고증을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곳곳에 보이기에, 그를 좇아가는 것만으로 만족도가 높고, 영화를 차치하고 들어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감미로운 음악들이 기독교풍/이슬람풍으로 교차 등장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3시간 20분이 넘는 무척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역시 전투씬의 연출과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구조 때문인데, 이를 대부분 드러낸 극장판에서는 제대로 된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개봉 당시에 도대체 어떤 편집을 했기에 이토록 전과 후가 명확히 다른 영화일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좋은 추억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 짓고 싶을 뿐...)


<킹덤 오브 헤븐>을 보면서, 리들리 스콧이 당시 연출을 앞두고 발리우드 영화에 심취해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발리우드의 전형적 매칭이 떠오르는 장면이 몇 있었다. 이와 비교해서 S.S.라자몰리의 <바후발리>를 엮어보면,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시대에 탄생한 전혀 다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바후발리>적 서사를 <킹덤 오브 헤븐>에서 어느 정도 추출한 흔적이 보인다. 영화의 배경이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싼 두 종교의 대립이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가 곳곳에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결과적으론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생각한다. 극적인 장면과 전개, 뻔하고 클리셰 같지만 늘 무너질 수밖에 없는 지점과 장면들이, <킹덤 오브 헤븐>에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사실 <킹덤 오브 헤븐>은 고증이나 비판에 앞서 연출자나 각본가의 지향점이 명백하게 녹아있는 영화로, 평소 히어로물이나 전쟁/역사에서 고수하던 리들리 스콧의 성향으로 보면 평등주의적 관점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화적 결말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정확히 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사상적인 고증에 있어서는 다소 분분한 견해를 낳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 '십자군' 자체보다 '십자군에 대항했던' 칼리파 시대의 이슬람들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제작 당시 9.11 테러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리들리 스콧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나가기를 제작자들은 저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영화가 만들어졌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2020년 11월 11일에 개봉하는 감독판 "꼭" 놓치지 말고 보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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