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염력>에서 무척 실망하고 다시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를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방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로 준비 중이라고 했던 <반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생겨버렸다. 결과적으로 다시는 <부산행> 같은 영화가 나오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반도>를 관람하며 했지만, 연상호 감독의 캐스팅과 연기 디렉션은 언제나 독보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배우들을 정말 잘 쓴다.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강동원은, 분명 <반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동원 원탑의 영화라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나오는 모든 장면이 적절하게 어울려 팬으로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강동원에 대부분을 할애하는 영화가 많지 않았고 또 액션이 주가 되기 때문에, 관람의 즐거움은 있었다. 이정현이나 구교환, 권해효, 김민재 등의 열연은 돋보였다.
다만, 거기까지라는 생각을 했다. <반도>를 생각할 때 예의 기대했던 부분들은 보이지 않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게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니라 15세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현 시국에 개봉하기 때문인지 혹은 일부러 덜어낸 것인지, 하드 고어적인 액션이나 묘사들이 일정 부분 누락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액션은 그래도 최근의 '액션 장르'를 표방하는 한국 영화들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좋았으나 그것도 부분적으로 좋고 나쁨이 섞여 있어 뭐라 말하기 참 애매한 수준이었다. 로케이션은 폐허가 된 인천과 서울을 타깃으로 잡았는데, 사실 특별한 지역들도 아니고 그냥 상징으로서의 '한반도'를 보여주는 것일 뿐, 타의 좀비물에서 등장하는 파괴된 도시들과 비교하면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설정이었다. 해외 판매를 굉장히 고려해 제작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이건 <반도>를 바라보는 한국 관객, 혹은 서울 근교에 거주하는 사람으로는 당연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액션들에 필연적으로 CG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CG 자체도 로케가 이렇다 보니 이질감이 일어나 게임 영상을 보는 듯했다. 액션과 특수효과가 착 붙지 않고 따로 논다고 해야 하나, 다시 생각해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카 액션 이후의 후반부. 신파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끄러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카 액션 씬들에 꽤 공을 들였고 그게 그대로 전달되긴 하지만, 그 전후에 배치된 중간중간에 의도적으로 플래시백/슬로 등을 걸어 두었는데 이게 거슬리다가 후반부에서 완전히 무너져 "아...."하는 탄성을 내지를 정도가 되었다. 특히 이정현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차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맞이할 뻔한) 바로 직전까지와 그 이후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해서 왜 굳이 이런 설정을 택해야 했는지 몹시 의아했다. 갑자기 투입된 UN의 구조씬과 헬기 안에서 나누는 대사는...그나마 좋았던 중반부의 액션들을 싹 잊게 만들 정도였다. <매드맥스> 같은 영화를 좇다가 급회전한 느낌으로, 이를테면 신나게 트럭 액션을 보여주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대교 아래를 구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보다 드라마 서사가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판타지 장르나 SF 등을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하거나 호러/스릴러 장르를 드라마로 제작하면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그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아마 <방법>이 생각보다 재밌었고 그로 인해 생긴 기대 때문일 텐데, 모든 의미에서 <반도>는 아쉽고 또 아쉬웠다. 해외 세일즈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