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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12. 2020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블라이 저택의 유령>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 동시대 호러/스릴러 장르를 구축하려 노력하거나 입지를 다진 감독들 중에 플래너건 감독은 압도적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고, 호불호의 문제라기보단 그 자체로 이미 '마스터피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때문에 <힐 하우스의 유령>에 관한 언급도 자주 해오곤 했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이렇듯 친애해 마지않는 마이크 플래너건이 <힐 하우스의 유령>의 속편으로 제작한 드라마다. 이미 제작 의사를 밝힌 지는 오래되었고 총 연출을 맡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위시리스트와 심지어 달력에까지 표기해놓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던 드라마. 공개는 2020년 10월 9일 오후께 되었고, 그날 전편을 몰아서 봤다.


마이크 플래너건의 총 제작으로 만들어진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익히 알고 있듯 <힐 하우스의 유령> 시즌 2 격의 드라마지만, 지난 8월 'Vanity Fair'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호러'보단 '러브스토리'에 충실했고 '공포'보단 '슬픔'의 감정이 훨씬 많은 고전 동화 같은 이야기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힐 하우스'에서 살던 가족의 과거/현재를 조밀하게 엮어 저택의 구성원에 집중했다면,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블라이 저택'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1843-1916)이라는 소설을 모토로 한다. 전작인 <힐 하우스의 유령>은 셜리 잭슨(1916-1965)의 동명 소설을 모토로 하는데, 두 작가 모두 '귀신들린 집'이라는 장르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재로 차용하는 등 현재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귀신들린 집' 장르의 양대산맥이긴 하지만 구조나 서사가 판이하게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셜리 잭슨의 소설을 훨씬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힐 하우스의 유령>에 대한 애정이 <블라이 저택의 유령>보다 높기도 한데, 실제로 제작된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이 압도적이며,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앞서도 언급했듯 호러 장르라기보단 미스테리-로맨스에 가깝기 때문에 기존 플래너건의 '호러 영화'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아무래도 <힐 하우스의 유령> 이상을 선사해 주진 못했다. 다만, <힐 하우스의 유령>이란 전작을 지우면 아주 말끔하게 잘 만들어진 말 그대로 '웰메이드'의 드라마.


1화부터 9화로 구성되어 있고, 한 편당 50분을 넘지 않는다. 매 화가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편이라 편하게 볼 수 있지만, 킬링 타임용 드라마는 아니다. 집중해서 봐야 할 장면들이 있고, 몇 순간을 놓치면 다시 이전화를 뒤적거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쉽게 선택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긴, 이런 드라마를 킬링 타임용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확신하지만.


시즌 중 1화만 플래너건이 연출했고 나머지는 1-2화씩 분할해 총 6명의 감독이 연출했다. 각 에피소드의 분위기는 일관되어 있지만 서사의 개연성이나 연출 등이 조금씩 다른데, 개인적으론 1, 8화가 제일 좋았고 2-3화는 더 타이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 퀴어 서사가 중심인 것도 좋았고 극 중 초반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형'을 공포 신들의 주요 소재로 잡은 것도 좋았다. 기분 나쁘지만 동시에 슬픈 서사는 여전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엮인 서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 서사에서 오는 슬픔과 분노와 안타까움 등은 전작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인데, 오히려 <힐 하우스의 유령>을 보지 못한 분들이 처음 <블라이 저택의 유령>부터 접한다면, 그리고 이어서 <힐 하우스의 유령>을 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넬' 역할을 맡았던 빅토리아 페드레티가 <블라이 저택의 유령>에서 주인공 '대니'로 나온다. 전작에서 총 4명의 배우가 겹치는데, 디어도라 역의 케이트 시겔(현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배우자)도 반가웠고 칼라 구지노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겹치는 배우들은 많지만 드라마 자체의 분위기가 꽤 달라 캐릭터들이 전혀 겹쳐 보이진 않았고, <힐 하우스의 유령> 팬들을 위한 장치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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