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영 Jan 29. 2022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리뷰


*내용 전개, 장면 묘사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추천작이 아닌 단독으로 포스팅을 해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개인적인 주간 추천작에 오르지 못했다는 걸 말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때문에, 넷플릭스 시리즈 치곤 제법 긴 이 드라마를 이틀에 걸쳐 정주행했다. 사실 12부작이건 16부작이건 보통 재밌다면 8화까진 끊지 않고 보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는 6화 정도에 끊고 다시 봐야 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를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를 남기고 싶었다. 이 드라마가 왜 재미가 없는지, 제법 탄탄하고 인기가 많던 원작 웹툰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단점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지점들이 견디기 힘들었는지를 남기고 싶어서다. 



1. 지나친 욕설 반복

 처음부터 청소년 불가 영화라고 못을 박고 시작했기에, 높은 수위 때문이 아니라 지나친 욕설의 난무 때문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정말 그랬다. 극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욕은 '씨발'. 1화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2화를 지나면서부터 12화까지 약 5분 단위로 반복되는 '씨발'을 듣고 있으면, 이게 욕을 찍기 위해서인지 극을 전개시키기 위해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된다. 한 화당 50분으로 잡으면 못해도 한 회에 10번, 12화를 통계로 치면 120번이나 그 말을 듣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 해도 정확한 딕션으로 '씨발'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걸 보면...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대사를 쓰는 작가가 분노나 감정의 표출을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다는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고. 드라마에서 제일 걸렸던 부분이 바로 이 쓸데없는 '욕 추임새'의 삽입.


2. 필요 없는 장면, 쓸데없는 서사 

 원작 웹툰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그러기엔 지금은 너무 낡은 만화이니) 원작에서 넣지 않았던 불필요한 서사나 장면을 보여줌으로 극의 흐름을 엄청나게 부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사실 한국 드라마 전반의 문제인데, 애초에 12부작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는 단언컨대 12부작이 아닌 6부작으로 끝났어야 했다. 특히 1화가 시작하자마자 25, 26분 즈음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학교 폭력씬, 성추행/성폭행 씬. 이게 정말 필요했나? 동일 범죄로 솜방방이 처벌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그냥 청불 딱지만 붙여놓고 자극적으로 실제 일어나는 범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1화부터 턱 걸리는데, 그 턱 걸림이 이후 청소년 임신-뜬금없는 모성애-극적 드라마 시퀀스로 흘러가는 걸 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아, 이건 연출과 각본이 작정하고 망친 결과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걸림돌의 산을 넘어 겨우 4화까지 도달하면, 이제부터야 좀 움직이고 뭔가 안팎으로 장면들이 교차되며 재미있어지나 싶으려니,  거기서부터 또 너무 넣고 싶은 게 많아서 문제가 된다. 사회적인 문제, 정치도 조금 섞어야 하고, 인간 드라마, 구원과 속죄, 설교와 교훈도 해야 하고.... 너무 할 말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데다가, 드라마 전체가 루즈하다보니 재밌게 찍힌 좀비 격돌/격투씬도 다 평이하게 느껴진다. '아.... 이걸 이렇게 루즈하게 간다고?'라는 생각이 12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3. 주 캐릭터들에 관해

 다른 걸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주연 캐릭터들이 병풍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거나 혹은 극에 섞이지 못한 드라마는 너무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벌새> 이후 박지후 배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다른 조연 캐릭터들에 밀려 기능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서 있을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처음 듣는 '로몬'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도, 분명 남자 주인공으로 잡혀있으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학생들과 너무 큰 이질감이 있어(외모의 문제가 아님) 단독샷이든 단체샷이든 일단 그가 맡은 수혁 캐릭터가 등장하고 나면, 긴장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주 캐릭터가 이러다 보니 나머지 캐릭터들이 좋고 튀어도 한 번에 묻힐 때가 많은데, 그게 바로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한계라고 생각된다. 외모가 수려한 배우들을 주연으로 세워놓고 병풍처럼 세워 극 밖의 이슈를 만드는 일. 여타 하이틴 드라마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 


4. 고어물로의 드라마

 사실 극의 루즈함만큼 고어가 받쳐준다면,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등장하는 좀비 장면들도, 좀비가 사람을 먹거나 사람이 좀비로 변할 때의 분장이나 묘사들도, 모두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군데군데 '저 정도는 해야 좀비물이지'하는 장면들이 많아 이런 유의 드라마를 아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좀 힘들었다 싶기도 했다. 좀비에게 물려 좀비화 되는 과정에 바이러스가 진화해 좀비도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경계에 놓인 캐릭터들의 묘사는 좋았다. 하지만 역시나 극이 늘어지다 보니 이런 장점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도서관씬이나 계단씬 같이 액션이 돋보이는 장면의 연출은 좋았지만, 비슷한 설정이 반복되다 보니 8화 이후에 다다르면 그저 심드렁해진다. 타이트하게 드라마를 붙이고 굵직한 액션을 지금처럼 배치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싫은 걸 이야기할 때도 공들이는 편이라 사실 이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해야 하나 싶은데, 개인적으론 좀비물을 너무 좋아하기에 푸념 같은 장황한 글을 늘어놓아 보았다. 혹자가 이젠 좀비도 한국의 비비고처럼 수출성이 되어버린 것 아니냐 말하던데, 어느 정도는 공감하면서도 그저 그런 비슷한 드라마들만 여전히 찍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이제 원작 웹툰 드라마의 굴레에서 좀 벗어날 때 되지 않았다. 오리지널 각본을 쓰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각색 작업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 완전한 각색이 아닌 원작의 바운더리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거기서 변주를 이뤄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 연출과 각본들이 살아남아왔던 것 같고. 이건 확실히 요즘 드라마판의 문제 같다. 


무엇보다 좀비물을 지난 3년 동안 너무 많이 봐서 이제 좀 질린다. 좀비 유행이라고 생각될 때는 있었지만, 너무 다 비슷한 설정들(바이러스, 숙주, 인육, 내장뜯뜯 등)이라 <블랙 썸머> 같이 좀비 자체의 묘사보단 그 외의 다양한 사건들을 보여주는 게 주가 되는 드라마들에 더 끌렸다. 그러니까 이젠.... 좀.... 새로운 게 필요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아카이브 8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