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아카데미 바람이 불어서인지, 극장가에 대거 좋은 영화들이 개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약간의 텀을 두고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어딘가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다가, 진지하게 담긴 힘이 좀 빠지고 그렇다고 그냥 흘러보내긴 좀 아쉬워 몇 마디 얹어 보고자 한다.
먼저, <하우스 오브 구찌>.
리들리 스콧 영화를 볼 때마다 '제발 만수무강 하세요, 감독님'이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흘러나온다. 그리고 최근에 열과 성을 다해 수작들을 찍어(!)내고 있으니, 그럴밖에. <하우스 오브 구찌> 또한 오래 기다린 영화였고, 리들리 스콧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어떻게든 잡고 마니, 이번에도 명불허전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아, 이건 올해의 영화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며, 도대체 몇 달째 아담 드라이버를 여기저기서 보는 것이며, 이런 식이면 여기도 티모시 샬라메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곤 했지만, 레이디 가가의 연기만으로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이라는 이름을 굳이 끌고 오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자레드 레토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 중반부까지 '도대체 자레드 레토는 언제 나오는 거야?'라고 외치다가 후반에 다다라서여 무릎을 탁 쳤다는 후문.... 지금은 극장에서 내려간 지 오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만수무강 영원히 감독하세요 리들리 스콧옹'이라고 되뇌며 관람석에서 일어났던 영화.
다음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
폴 토머스 앤더슨, 'PTA'의 거의 모든 영화를 챙겨 봤고, 모든 영화가 대체로 취향이었기에 그저 PTA라는 이름으로 늘 신작을 기다리곤 한다. <리코리쉬 피자>의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외신에서 'PTA 최고의 멜로 코미디'가 될 거라 보도했고,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까지도 그 카피를 보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제법 그와 비슷한 문장으로 수식할 만한 영화였다. PTA 최고의 '멜로'는 아니어도, 최고의 '코미디'라고는 할 법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PTA 팬들이 아니라면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을 영화이기도 했다. <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 <펀치 드렁크 러브> <팬텀 스레드>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면서도, 앞에서 열거한 각 영화의 중심인물들을 한데 때려 넣은 듯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 반면 PTA의 팬이라면 이런 이유로 기대 이상 만족했을 거라 생각했다. PTA 초기작들이 다수 생각나는 걸 보면 여러 가지로 PTA 세계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의 필모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역시 PTA'라며 혀를 내두른 건, 모든 시퀀스를 다루는 디테일,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에피소드별의 단독성, 그리고 이 모든 게 '굴러가도록 만드는' 개연성.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본 개봉영화인 <나이트메어 앨리>.
델 토로의 영화를 100% 신뢰하며 매번 신작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건 사실 아니다. <판의 미로>나 <헬 보이>, <셰이프 오브 워터> 등 크리쳐 물을 소재로 대체로 취향의 감독이었고, 적어도 지금까지 이어온 일련의 필모들을 통해 중간 이상은 항상 해왔던 감독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항상 주목하게 된다. 무엇보다, 델 토로 최고의 작품이라 거의 20년 동안 이야기해오고 있는 <악마의 등뼈>(이거 제발 어디선가 서비스해 주면 좋겠다) 감성 그대로 언젠가 역작을 만들 거란 믿음은 변함이 없으므로, 여전히 그 감성 그대로를 기다리며...<나이트메어 앨리>를 봤다.
델 토로 첫 번째 느와르 영화인 동시에 잘 다루지 않던 스릴러물이기도 하다. 델 토로 특유의 크리쳐나 판타지적 요소는 없고, 오로지 사건과 인물에만 중심을 맞춘 영화다. 사실 델 토로의 영화이기보단 나는 케이트 블란쳇 & 토니 콜렛+델 토로라는 조합이 신선해서 선택하게 된 영화. 예상했듯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토니 콜렛, 윌렘 대포, 루니 마라, 리처드 젠킨스 등등 대배우들이 한 틈도 양보하지 않고 '잘 봐, 우리들 얘기다!'하고 소리 지르는 듯한 존재감에 두 시간 반이 대체로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스토리만 좀 더 타이트했다면 좋았을 텐데, 러닝타임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했고, 델 토로와 이 정도 급의 배우들이 만나면 이런 느낌이 나온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은 영화이기도. 몇 장면은 여전히 기억에 남고, 델 토로 스스로 좀 더 '가고 싶었던'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