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아직 낯선 여행지, 버마를 들여다보다
현재 버마의 공식 명칭은 ‘미얀마’로 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는 군사정권에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미얀마의 국민들은 버마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 이후로 한국의 많은 언론사들도 이에 따라 ‘버마’로 부르고 있으며, 본 칼럼 또한 현재 버마인들의 정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버마’를 택했다.
'아웅산 수치', '군부정권' 등의 단어로 수식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국가인 버마(미얀마)는 우리에겐 아직까지 낯선 이름에 속하는 국가다. 오랜 기간 동안 군사정권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왔고 엄청난 규모의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는 버마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독재’라는 이름으로 얼룩져 다양한 문화적 접근이나 여행이 금지된 매우 위험한 국가라고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버마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에 속하며, 쾌적한 여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베일에 가려진 나라, 아시아의 마지막 보석 ‘버마’,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인 ‘바간’과 ‘인레호수’를 소개한다.
바간은 버마 통일왕국의 첫 번째 수도이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손꼽힌다. 바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왕권에 의해 수 천 개의 사원과 탑을 건설하며 시작되었다. 바간은 크게 올드 바간과 뉴바간, 그리고 냐웅우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바간을 대표하는 유적지들은 주로 올드 바간 근처에 모여있다. 올드 바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해, 올드 바간에 살고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뉴바간이나 냐웅우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주로 올드 바간에 많지만, 바간 시내 어디에서나 사원과 탑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올드 바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올드 바간과 뉴바간, 냐웅우 지역을 잇는 교통수단은 트럭버스, 우마차 등 다양하게 구비되어있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편리하게 바간 곳곳을 누비며 파고다들을 감상할 수 있다. 때때로 트럭버스에 올라 현지인들과 함께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나누며 부대끼다 보면, 바간 깊숙하게 숨겨져 있는 진짜 버마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는 희귀한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신의 국가, 자신의 도시를 찾은 외국인들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버마인들을 보고 있으면, 버마가 왜 ‘평화의 나라’로 소개되고 묘사되는지를 백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초원과 나무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파고다들의 향연. 바간 어디를 돌아봐도 그림 같은 풍경에 넋을 잃게 되지만, 바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일출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몰과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쉐산도 파고다는 북새통을 이루는데, 가파른 계단을 걸어 파고다의 꼭대기에 다다르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유독 쉐산도 파고다를 방문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단번에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사원들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보는 바간의 풍경은, 고대 시절의 바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출시간에 맞춰 바간 곳곳에서 띄워지는 수많은 애드벌룬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매일 이른 새벽마다 쉐산도 파고다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곤 한다.
버마가 주변국들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는 등 수많은 고충을 겪으며 수많은 사원들의 고향인 바간의 일부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훼손되고 일부는 파괴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간은 천 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탑들을 뒤로하고 삶의 터를 꾸려온 바간의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눈빛으로 자신이 바간에 속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바간은 그들의 선조가 일궈놓은 최초의 땅이자, 버마 국민들의 정체성이 가장 짙게 녹아있는 유일무이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바간에서 버스로 10시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인레는 샨 지방에 속해있는 해발 880미터의 고산지대다. 인레를 이루고 있는 커다란 산정호수 ‘인레 레이크’는 버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오랜 시간 동안 물 위에서 생활해왔던 ‘인따족’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인따족은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생활하며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이용해 수경재배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버마가 일부 개방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수용하게 된 이후부터 인따족 대부분이 관광산업으로 뛰어들며 옛 전통을 인따족의 전통관습은 대폭 줄어들어버렸지만, 그들이 생활했던 수상가옥과 수상사원들은 여전히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인레호수를 부유한다.
인레호수를 지키고 있는 인따족은 1,400명 정도. 인따족 외에 샨 족, 타웅요족 등 다양한 부족들이 호수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새벽이 밝으면 어김없이 조그마한 배를 몰고 일어나 호수 위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해가 지면 그물을 걷고 노를 접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자들의 숙소가 몰려있는 선착장에서 수상가옥이 있는 마을까지는 보트로 꼬박 1시간이 걸린다. 인레호수 위에 위치한 수상마을들은 총 16개로 나뉘어 서로 다른 구역을 이루는데, 이들 구역은 각각 사원, 수공예품 판매, 그림 판매, 직물공장, 어업, 수경업 등 다양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모두 둘러보려면 아주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각 구역을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작은 보트다. 인따족은 한쪽 발로 노를 휘감아 보트를 운전하는 굉장히 특이한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인따족 만의 보트 운전 방식으로, 넓은 호수에서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터득된 기술이라고 한다. 한 손으로는 그물을 치고, 한 발로는 노를 저으며 움직이는 인따족의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신기하기 때문에, 인레호수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인따족의 노 젓는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인따족의 수상마을은 ‘물’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산업이 발달되어있다. 육지로 이동하는 데만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 모두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밭 대신 수초들을 이용해 신선한 채소들을 재배하고, 물에 빠진 나뭇가지들을 엮어 그릇을 만들거나 우산을 만든다. 가내 수공업이 다른 도시보다 월등히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가진 이 곳 인레호수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연꽃 줄기에서 작은 실을 뽑아 직물을 만드는 ‘연꽃 공방’이다. 연꽃 줄기에서 나온 끈적한 섬유분을 십 수 번 겹친 후, 베틀을 이용해 이것을 각종 공예품으로 만드는데, 자연에서 바로 얻어낸 귀한 재료인 만큼 그 품질 또한 상당하다.
보트 한 대를 빌려 튼튼한 목조로 만들어진 수상 낙원을 하루 종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호수 밖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레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특유의 온화함과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자전거 한 대 빌려 훌쩍 산책을 떠나기에 적합한 마을, 인레는 아침, 점심, 저녁의 시간대별로 고요, 활기, 그리고 온화함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버마의 음식
버마의 음식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만큼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버마의 음식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버마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조차 버마의 먹거리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버마의 주식은 쌀로, 버마인들은 한국과 같이 버무리거나 무친 각종 반찬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는 것을 주된 식사로 삼는다. 터민쪼(야채볶음밥), 응아바웅(생선찜), 쩻따힝(닭볶음탕) 등, 한국의 메뉴와 비교해도 좋을 정도로 버마의 음식은 한국인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한 가지 주의할 점, 버마는 불교국가이다 보니 음주를 즐길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일반 레스토랑이나 가게 들에서 맥주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으나, 이를 길거리에서 왁자지껄하게 마시는 등의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아이러니하게도, 버마의 맥주 ‘미얀마 비어’의 맛은 일품 중 일품이다!). 또한 버마에서는 한국에서 쉽게 즐기던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은 잠시 잊도록 하자. 사실 그보다 훨씬 맛있는 먹거리들이 버마에는 차고 또 넘쳐난다.
바간, 인레호수 여행 시 주의할 점
바간과 인레호수는 버마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지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들다 보니 두 도시의 숙소는 항상 포화상태다. 이곳에 유입되는 관광객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도시 내 숙소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해서, 하루 종일 걸려도 숙소를 찾지 못해 길바닥에서 헤매야 하는 불상사를 겪을 확률이 아주 높다(설사 자리가 있다 해도 대부분 ‘부르는 게 값’ 일 정도). 이를 피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숙소를 예약해두기를 추천한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직접 발로 뛰어 숙소를 찾아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버마에서는 잠깐 접어두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