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기까지 꽤 오래 고민하던 영화였다. 데미언 셔젤의 신작이면 응당 바로 달려가야 했지만 주연 멤버에 브래드 피트가 있었고, 그와 안젤리나 졸리의 법정 공방을 알게 된 이후로 브래드 피트의 작품에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사실 애시당초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작품이 브래드 피트의 것이어서 본 적이 있던가? 보고 좋아 돌아보니 피트가 있었다... 정도로 말하는 게 옳겠다. 아무튼 그래서 무려 마고 로비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빌론>의 관람을 미루다가 친구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돌비시네마 막차에 올라탔다. 러닝타임이 3시간 8분이나 된다는 건 별로 일은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든 건 역시 브래드 피트...
아무튼 각설하고, <바빌론>은 올해 본 영화 중 정말로 인상 깊을 영화임은 분명한 동시에 데미언 셔젤의 역작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느낀 영화판의 흥망성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영화였고, 그가 이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지점들을 고민하고 주저했는지가 대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다방면으로 재해석한 영화가 바로 <바빌론>인데, 둘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의 중심에 위치한 영화계 사람들에 대해 다뤘고 <사랑은 비를 타고>가 다소 환상을 이야기한다면 <바빌론>은 그 정 반대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빌론>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사실 <사랑은 비를 타고>를 봐야 하는데... 그게 아주 큰 핸디캡으로 작용하지는 않고, 사실 꽤 많은 고전 영화들이 <바빌론>에 인용되는데 이를 제대로 알고 가면 좀 더 즐기고 웃길 법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정도. 아무튼 이 영화는 '똥으로 시작해서 구토로 끝난다'는 말에 걸맞게, 영화계에 산재해있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며 '오, 그래도 영화!'라고 외치는 동시에 그 거룩한 말에 가차없이 침을 뱉기도 한다. 사실 '바빌론'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나처럼 '앗, 그 절대 악의 도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어떤 지옥도 혹은 비판의 은유들이 영화 내내 곳곳에 들어찰 거라 생각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이런 방식의 '사랑은 비를 타고'의 오마주에 아주 만족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며 과거의 유령과 현재의 스타가 대치하고, 그 모든 과정을 '천박하지만 절대다수를 위한' 예술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영화. 영화인 혹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후반부에 다다라 매니의 눈과 회상으로 보여지는 장면과 더불어, 앞서 잭의 이름으로, 그리고 넬리의 이름으로 정의되고 반복되는 '영화'라는 매체의 이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고 꽤 많은 고전영화와 함께 해왔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찬찬히 뜯어보며 거대한 코끼리의 똥 세례부터 'LA의 똥구멍' 이후까지 다시 한번 훑어보고 싶다. 무엇보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그 캐릭터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데미언 셔젤의 다음 작품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정말 '야, 이거 미친놈 아니야?' 싶은 순간들이 즐비해서 즐거웠던 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