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습니다.
영화를 보자마자 <독전>으로 잠시 주춤했던 이해영 감독이 제대로 된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항일운동을 하던 허구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추리극이라는 정보만 들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추리극의 서사로 이어지다가 중반부에 급격하게 액션 장르로 변하는 장르의 영화라 아주 좋았다. 촘촘하게 짜인 추리극이 아닌 다소 엉성한 지점들이 있다 생각되었는데, 중반 이후 유령이 누구인지 밝혀지고 나서부터 이 단점이라 생각했던 지점들이 모조리 장점으로 올려 붙는 걸 보는 게 즐거웠다. 최근 봤던 한국 영화 중에 가장 즐겁게 봤던 영화다. 보는 내내 이해영의 장점이 전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이해영 감독이 명백하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진하며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이를테면 박차경 역할의 이하늬와 유리코 역할의 박소담이 맞붙는 장면, 그리고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가 막힌 총격 액션을 선보이는 장면들이 그렇다. 함정에 빠진 '유령'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숨겨져 있던 진짜 '빌런'이 사라지게 되는 지점까지의 긴장이 정말 좋았다. 시네필 감독으로의 이해영이 그려놓은 미장센과,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영화들과 장면들의 집대성(세르지오 레오네, 로드리게즈 등의)이 이루어지는 특정 장면도 좋았다.
가장 즐거웠던 건 <유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다 저마다의 이유로 매력적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 캐릭터, 그중에 주인공 박차경의 캐릭터는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그대로 입고 나온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외의 모든 조연들도 등장부터 퇴장까지 전부 좋았다. 어쩐지 좋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 같지만 정말로 <유령>을 보고 나와서 이 말만 반복했으니 어쩔 수 없다...
시대극이라고 하기엔 모든 서사가 허구에 가까운 영화였고, 대체역사라고 하기엔 빈약한 지점이 많았지만 이게 절대로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꾸미고 위장하고 창조하며 통쾌하게 직진하는 액션 누아르 영화라 느껴진다 해야 할까. 특히 박차경의 캐릭터는 동성애를 숨길 생각도 없고 또한 그 사랑이 주가 되어 이 모든 사건을 진행하게 되는 본질적인 원동력이 되고... 아무튼 다방면으로 만족한 영화였다. 1, 2월의 극장가에서 놓치면 정말로 후회할 거란 말을 아주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엄청난 까메오가 등장한다. 그 장면에서 정말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