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알약

by 강민영

델리 빠하르간지에 몇 개월 이상 묵었을 때던가, 여하튼 그 수를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택배 부치는 택배왈라(택배꾼)이 '이번달에 한국으로 보낼 택배는 왜이렇게 무거워, 20루피는 더 추가해야겠어'라는 말을 할 즈음에 '아, 이제 슬슬 델리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던 바로 그 주간의 일이다.

델리의 빠하르간지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고간다. 한여름, 한겨울의 방학시즌이면 한국대학생들의 향연으로 발 디딜 틈 없어지고, 그때도 딱 그 무렵이었다. 한여름이었고, 나는 찌는 더위를 뒤로하고 히마찰을 지나 레-스리나가르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갈 생각이었다. 적당히 짐을 꾸리고, 너무 무거운 책이나 도구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델리에 돌아오면 그때 다시 가져가기로 하고 지인에게 잠시 맡겨두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약이 얼마 남지않아 사우스델리에 있는 한 외과병원으로-쓸 일은 없겠으나 정말 유사시에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진통제와 근육이완제, 혈관확장제 등을 처방받으러 막 숙소를 나서던 참이었다. 평소 자주 가는 한 카페에서, 한 한국인 여성분이 애타게 복통을 호소하며 지사제와 기타 등등 복통에 효과가 있는 약들을 구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빠하르간지는 어차피 끝에서 끝까지 아무리 골목이 많아도 그곳에 오래 묵던 사람에겐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반대로 틀어 그 여성분이 있는 숙소를 실시간채팅으로 물어 그쪽으로 향했다. 거리도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는 적당하다싶었다. 설사에 효과가 있는 바나나를 바나나왈라를 잡아 흥정을 조금 하고 산 후, 생수나 한 병 사들고 방문을 두드렸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 여자분은 다른 일행과 함께 있었는데, 그 일행 중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눈치였다. 아무튼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대번에 '그냥 이건 물갈이다'싶던 부분이 있었고 보통 그런건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나아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말을 태연하게 끄덕이며 듣고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바나나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주머니에 담아온 알약 몇 개를 꺼내서 손에 담아 건네주었다. 그냥 봐도 어떻게 먹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한국어'로 쓰인 알약들이었다.

"한국에서 떠날 때 가져온 알약이예요. 급할 때 먹는데, 몇 알 남지 않았지만 그거 다 드세요." 라는 말을 하고, 곧바로 '어디 살아요? 서울? 그 약 한국, 서울에서 가져온 약이예요' 라고 말을 하자마자 그 여성분은 알약을 들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한낱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장약 정도이고, 그냥 약국에 가면 파는 지사제 정도인데, 그래도 '한국'에서, 본인이 거주하는 '서울'에서 가져왔다는 그 말, 그 단어 한 마디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놓인다며, 당황하는 내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 '한국'이라는 그 말이 너무도 그리웠다고 했다. 그녀는 단숨에 알약을 털어넣고, 안심이 된다는 내색을 보이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며칠 뒤, 델리에서 500km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추위를 느끼며 쉬고 있을 즈음 그녀에게 메세지가 왔다. '고맙다, 그 약 덕분에 나머지 일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이뿌르에 있고, 이제 속앓이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그녀가 한국산 알약을 삼킬 때 생수통에 인도에서 만든 지사제 성분이 있는 고체 포를 생수통에 섞어 이걸 꼭 마시라고 설명해주었지만, 아마도 그녀는 그걸 먹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라는 말에 강하게 반응하던, 그래서 '몇 알 남지 않았지만 다 먹어라'라는 말이 그렇게 미안하고 고마울 수 없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별일 아니니, 남은 일정 잘 보내시고 혹여 다음에 인도에 오게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속이 더 수월할거예요-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보내며 대화를 끝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예요'라는 말 한 마디를 기다렸고 또 원하던 바를 이루어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나는 그때 그 한국산 약보다 인도약국에서 타다 먹는 지사제가 훨씬 잘 듣고 성분도 좋으며, 효과도 바로 온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약보다 인도약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50배는 더 잘 듣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 놓인 그녀가 듣고 싶은 말 한 마디는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한국산 약'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내게 "언제 한국에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무 미안하네요."라고 말했다. 그 얼굴 위로 "전 한국약보다 인도약이 훨-씬 잘 들어요. 괜찮아요."라고 부연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 미안함과 고마움도 그냥 고스란히 그곳에 얹어두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욕심을 보태면, 속앓이로 인해 델리 빠하르간지, 인도에서의 첫 여정이 나쁜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녀가 삼킨 알약은 내가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이전에 이미 버리고 가자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알약의 무게라고 해봤자 몇 그램도 채 되지 않을 작은 것이겠지만, 나에겐 더이상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리타국의 델리에서 소각장 신세가 되기 전에 그 약은 주인을 찾았고, 나에겐 효과없던 그 약은 어느 누군가에게 기적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그만하면 그 알약으로서는 꽤 극적이고 완벽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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