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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Feb 26. 2024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덩키>

최근 굵직한 인도 영화들이 대거 넷플릭스에 풀린 기념으로, 즐겁게 몇 주 간은 새롭게 공개된 인도 영화를 중심으로 추천작을 꾸려보려 한다. 그 첫 번째 타자는 <세 얼간이> <P.K> <산주>의 감독 라즈 쿠마르 히라니의 신작, <덩키>. <덩키>에는 샤룩칸, 탑시 판누, 보만 이란, 비크람 코차르 등 굵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는데 이중에서 인도 영화 최고의 배우 중 하나인 샤룩 칸의 출연, 그리고 샤룩 칸과 라즈 쿠마리 히라니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엄청난 기대와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샤룩칸의 부인이자 인도영화계 최고의 셀럽 중 하나인 가우리 칸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레드칠리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제작자들과 히라니 감독이 각본, 제작, 연출을 구성했다. 2023년 12월 인도를 포함해 월드와이드로 개봉했으며 연말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꼽히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2023년의 힌디영화가 되었다.


당나귀를 연상시키는 '덩키'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덩키 플라이트', 그러니까 '당나귀 비행'을 말하는데, 이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당나귀'에 빗댄 펀자브어의 관용구에서 유래되었으며 영국, 미국, 캐나다와 같은 국가에 비자 없이 입국하기 위해 사용되는 불법 이민 기술을 말한다. 실제로 이 방법을 통해 밀입국해 망명한 사람들도 많지만, 대다수는 사기로 전재산을 날리는 등 피해가 극심하다. <덩키>는 이 '덩키 플라이트'를 주제로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인도를 벗어나 영국 런던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른바 '잉글랜드 드림'에 대한 소재로 시작되는 휴머니즘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덩키>는 라즈쿠마르 히라니의 영화답게 유머러스한 부분들과 더불어 가볍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곳곳에 깔려있는 이를테면 '착한 맛'의 영화다. <세 얼간이>를 비롯해 기존의 히라니 영화들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그의 연출이나 서사적 장점이 녹아있는 이 영화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히라니 감독의 장점은 가벼운 유머와 농담들 기저에 사회비판적 요소를 깔아두고 결론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는 것인데, 이 공식은 <덩키>에서도 유효하다. 오랜 시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 식민지 국가로 지내야 했던 치욕의 기간들 사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런던 드림' 혹은 '잉글랜드 드림'에 대해 다소 둥글게 이야기하며 말미에 이르러서는 이를 광범위적으로 비판하거나 끌어안는데, 다소 민감한 주제를 굉장히 스무스하게 만들어내는 히라니의 장점은 신작에서도 역시 유효하다. 불법 이민과 그로 불거지는 사기, 그리고 사생결단으로 국경을 넘는 일은 암울한 문제이자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를 세심하게 잘 다루고 있다.


라즈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역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제나 그가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밀고 나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계승하거나 소화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웰메이드 영화'를 통해 표출해내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더불어 별처럼 반짝이는 샤룩 칸의 존재는 자칫 다른 결로 빠질 수도 있을 <덩키>의 단점을 적당히 채워주며 기능하게 만든다. 샤룩 칸은 최근 <파탄> <자완> 등 굵직한 힌디 액션 영화에 주로 출연했고, 이 때문에 이제 정말 별 볼 일 없어진 힌디 영화들의 부활을 '킹 칸(샤룩 칸의 별명이다)'에 의존해 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샤룩 칸은 확실히 샤룩 칸이므로, 다소 주춤한 힌디 블록버스터 시장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엔 일조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영화를 소개할 때 다뤄보면 좋을 듯하다.) <덩키>도 어떤 맥락에선 샤룩 칸의 열연과, 잘 빚어진 샤룩 칸의 캐릭터 '하디' 덕분에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영화를 '웰메이드'의 반열로 올려놓은, 이른 바 탑급 주연 배우에 기댄 영화로 평가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힌디영화, 혹은 '발리우드'라 통칭되는 시장에서 팔색조로 군림하고 있으며 액션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다재다능함을 여전히 뽐내는 영원한 인도 영화의 '왕'임을 증명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다하지 않나 싶다.


라즈쿠마르 히라니식의 농담, 그리고 그 농담을 아우르는 거대한 휴머니즘, 굴랍자문처럼 달달하고 잘레비처럼 중독적인 인도 영화의 '단맛'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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