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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Nov 19. 2018

좀 싸가지 없어도 괜찮아

인도 첫날, 빠하르간지에서 살아남기

예나 지금이나 인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인도 여행지는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인 아그라를 중심으로 한 북인도 지역들이다. 최근에는 인도 남부 뭄바이나 첸나이 등의 국제선 취항이 증가해 한국에서도 남인도를 제법 찾는 편이지만, 남인도로 입국한다 하더라도 인도 땅을 밟은 이상 ‘타지마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무척 어려워, 기차로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거리를 이동해 북인도로 달려가기도 한다. 때문에 인도가 초행길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지마할을 포함해 갠지스 강이 흐르는 유명 관광지인 바라나시 등을 이동하기 쉬운 델리를 거점으로 잡곤 한다.  


델리를 중심으로 인도여행을 시작한다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은 뉴델리에 위치한 ‘빠하르간지’ 구역이다. 빠하르간지는 1970년대 히피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인도 전역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인 동시에 배낭여행객의 주머니 사정에 걸맞는 숙소들이 즐비해있다. 델리 공항에서 2, 3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여행자 거리이기 때문에 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첫날의 숙소를 빠하르간지로 잡는다. 빠하르간지는 공항과의 접근성을 배제한다고 해도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전국을 이어주는 뉴델리역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행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한국인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 등이 밀집해있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받기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인도의 물가와 분위기를 실감하기 가장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하니 얼핏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델리의 빠하르간지는 방콕의 카오산과 전혀 다르다. 앞서 인도에 도착하면 우선 공항 내에서 숨을 한 번 고르고 배낭끈을 조율하라고 이야기한 것은 모두 이 ‘빠하르간지’ 때문이다. 인도여행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가장 유용한 곳이자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마주할 수 있는 여행자들의 요람인 동시에 텔레비전과 책으로만 예습해왔던 인도의 밑바닥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곳이 바로 빠하르간지다.


심지어 빠하르간지까지 도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공항철도에서 빠져나와 뉴델리 철도역을 건너야 빠하르간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역 하나를 건너가는 것쯤이야 간단하다고 생각되지만 뉴델리역은 하루에도 수 십만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게 될 수 있다. 이 혼란을 틈타 접근하는 사기들은 십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성행 중인데, 이를테면 ‘빠하르간지를 가려면 릭샤를 타고 가야 한다’든지, ‘빠하르간지는 지금 들어갈 수 없으니 다른 곳을 안내해주겠다’ 등이다.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인도에 처음 오는 사람과 인도가 익숙한 사람을 귀신 같이 구별하는 능력을 가져서, 뉴델리역의 아수라장을 목도한 초짜 여행객들을 향해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끊임없이 따라붙곤 한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사기행각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수법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소리인데, 그건 ‘인도’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뉴델리역에서 빠하르간지 초입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사기를 막고자 전 세계 여행자들의 카페들에는 이에 대한 지령까지 정리해서 공지로 사용하고 있다.   


많이 흔들렸지만 뉴델리역의 혼란을 엿보기엔 충분한 사진이 아닐까 싶다.


빠하르간지 내에 점찍어둔 숙소까지 무사하고 안전하게 가기 위한 답은 딱 하나다. ‘앞뒤 양옆 보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걸을 것’. 뉴델리역을 잘 통과하여 빠하르간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해도 여전히 혼란스러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가운 시선들, 시종일관 팔을 잡아끌며 어쭙잖은 한국어로 ‘언니’, ‘싸요’, ‘안녕’ 등을 연발하는 상인들, 경적을 울리면서 쫓아다니며 타라는 손짓을 보내는 오토릭샤 기사들. 빠하르간지에 도착하면 결코 유튜브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보았던 인도의 모습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이나 둘, 셋씩 짝을 지어 오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말을 걸어오는 인도인들을 주의해야 한다. 일행 중 한 명이 스스로도 모르게 그들에 홀려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즈음, 소매치기나 성추행을 시도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 시기 즈음에 인도에 학을 떼고 한국행을 결심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처음 만나는 인도가 마냥 신기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신선과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인도에 처음 도착한 날’ 이후로 배정되어야 함을 스스로 숙지해두어야 한다. 빠하르간지에 내려서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다분히 전투적이어야 하며, 이따금씩 요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며 상인들이 나를 불러 세운다고 해도 지체 없이 그들을 뿌리칠 수 있는 대담함을 갖추어야 한다. 평소에 누구에게나 온화하고 여린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 딱 한 번, 인도에서의 첫 날 만큼은 그 성격을 던져버리고 냉정하고 냉랭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빠하르간지에 도착해서 만큼은 당당하게 ‘No’를 외칠 수 있도록 무장해두도록 하자.


숙소에 도착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배낭을 내려놓은 후 숨을 한 번 돌릴 수 있을 때까지는, 좀 싸가지 없어도 괜찮다. 인도의 빠하르간지에서는 ‘싸가지 없음’이 미덕이니까. ‘샨티, 샨티(평화, 평화)’는 그 다음부터 외쳐도 늦지 않다.


평소의 빠하르간지.
빠하르간지 곳곳의 전봇대의 모습. 빠하르간지의 성격과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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